[이미령의 스토리텔링 경전에세이]*법구경-담마빠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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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흰구름 작성일24-05-07 18:21 조회3,95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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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이야기꾼[이미령의 스토리텔링 경전에세이] *법구경-담마빠다 1*
톨스토이가 ‘법구경’ 을 애정한 까닭 !
인생 알고 싶었던 톨스토이
“나 자신이 주기적으로 되풀이해 읽을 책을 만들어야겠다. 에픽테토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노자, 부처, 빠스깔, 신약성경 등. 이는 모든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책이기도 하다.”
톨스토이가 56세이던 해 1886년 3월 15일 일기의 한 구절입니다. 톨스토이는 정말 책을 좋아한 사람입니다. 그가 읽는 책들은 좀 특별합니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어떻게 가치 있는 삶을 살다 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그런 책들입니다. 톨스토이는 그런 책들을 읽으며 밑줄을 긋고 옮겨 적으면서 생각이 깊어지는 행복을 맛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다 혼자만 읽기가 너무 아쉬워 수많은 사람들과 공감하고자 그 좋은 구절들을 일기형식으로 모아서 출간했습니다.
이 글들은 당시 사람들에게 큰 호응을 불러일으켰고 톨스토이는 몇 차례 제목을 바꾸고 내용도 보강하면서 평생 다듬고 또 다듬었습니다.
〈인생이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이 붙은 그의 책은 1200페이지가 넘습니다. 한 페이지씩 넘기면서 현자들의 좋은 말씀을 읽어가는 데 뜻밖에도 자주 붓다, 부처라는 출처가 눈에 띕니다. 무려 약 58가지 불교 경전 구절이 잡힙니다. 그런데 특별히 경전 이름 하나만이 도드라지게 눈에 띕니다. 그게 바로 〈법구경〉!
발췌해서 실어논 게송이 15편 정도입니다.
톨스토이의 종교는 러시아정교회입니다. 신을 섬기는 종교이지요. 그는 부유한 지주 집안에 태어나서 좋은 교육을 받고 젊은 시절에는 누가 봐도 한량인 듯 태평스레 세월을 보내고 도박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러다 군에 들어가서 전장에도 투입되는데 그 와중에도 글을 썼고, 마침내 소설가로서 아주 큰 인기를 얻습니다. 대문호라 칭해질만큼 성공한 인생입니다. 그런데 그 인생의 정점에서 그는 고개를 갸웃합니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이 지구 위에 내던져진 목숨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무엇이 진짜 삶이고,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가?
이 물음은 그의 인생 마지막까지 착 달라 붙어서 그는 이 질문에 대답을 구하지 않고는 어떤 일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성현들, 철학자들의 책에서 길을 찾고자 했지요. 열심히 읽고 옮겨 쓰면서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모색했습니다. 그가 읽고 좋은 구절을 옮겨온 텍스트로는 단연 기독교 성경이 압도적이지만, 애머슨, 소로, 아미엘, 루소, 플라톤, 쇼펜하우어 등등의 철학자들 책에서도 아주 많이 옮겨왔습니다. 동양의 책으로는 공자, 노자 그리고 불교입니다.
편히 살려면 편히 살다 갈 수도 있는 인생이었는데, 톨스토이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삶이 문득 내놓은 궁극적인 질문을 받은 순간 그의 평생은 대번에 뒤틀려 버렸습니다. 그의 이런 고뇌에 찬 인생에 부처님 말씀과 〈법구경〉 구절이 담겨 있다는 점이 불자인 내게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톨스토이가 소개하는 〈법구경〉 구절
그가 어떻게 〈법구경〉 구절을 필사했는지 소개합니다.
“자기 자신을 이기는 자는 싸움터에서 백만 군대에 이기는 자보다 위대한 승리자이다. 모든 타인을 이기는 것보다 자신을 이기는 것이 훨씬 낫다. 싸움터에서 남을 이긴다 해도 언젠가는 질 수도 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이기고 자기 자신을 다스리는 자는 영원히 승리자로 남을 것이다.”(299쪽)
“온유함으로 분노를, 선으로 악을, 인자함으로 탐욕을, 진실로 거짓을 정복하라.”(334쪽)
“인간은 스스로 죄를 범하고 스스로 악을 생각하며, 스스로 악을 멀리하고 스스로 마음을 정화한다. 죄에 빠지는 것도, 마음이 깨끗해지는 것도 오직 자신의 힘에 달려 있다. 남이 너를 구원할 수는 없다.”(428쪽)
“악인도 그가 행한 악이 아직 곪아 터지기 전까지는 행복하다. 그러나 그것이 곪아 터졌을 때 악인도 악을 의식할 것이다. 어느 누구도 악에 대해, 그런 것은 자기와 아무 상관 없는 거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한 방울의 물이 모여 항아리를 채우듯, 어리석은 자는 조금씩 악을 거듭해가는 동안 악으로 가득 차게 된다.
악은 바람을 향해 뿌린 먼지처럼 그것을 행한 자에게 되돌아온다. 하늘을 날아가도 바다에 들어가도 깊은 산 속에 숨어도, 인간이 자신이 저지른 악한 일에서 달아날 수 있는 곳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515쪽)
그가 살던 시절 러시아는 대혼란의 시기였습니다. 농노해방과 사회변혁의 욕구가 걷잡을 수 없이 끓어올랐고, 황제 일족은 비운의 마침표를 찍으려던 찰나였지요. 게다가 전쟁은 쉬지 않고 벌어졌습니다. 그 대혼란의 시기에서 과연 무엇이 세상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요? 톨스토이는 극도의 갈등과 살육의 세상에서 고민을 했고, 결국은 외부의 어떤 힘도 세상과 자신을 구원할 수 없으며, 인간들 각자가 악을 멈추고 선을 행하는 길밖에는 없음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그토록 경멸하던 신앙을 회복하게 됩니다.
그래서인지 그가 인용한 〈법구경〉 구절에는 ‘스스로의 책임’을 강조하는 분위기가 강합니다. 인간의 선한 의지만이 세상을 구원하고 자신을 행복하게 만든다는 부처님 정신에 압도된 것이 틀림없습니다.
서양으로 건너간 〈법구경〉
〈법구경〉은 불교경전 중에서도 가장 유명합니다. 서양에서도 일찍이 번역되었지요. 덴마크 학자 파우스 뵐이 1855년 빠알리어 〈법구경〉을 라틴어로 번역하여 유럽에 전파하면서 〈동방성서〉라고 불렸고, 근현대적 번역으로는 막스 뮐러의 영역(1870년)이 있는데, 이후 막스 뮐러의 번역본을 나름대로 윤문하면서 〈법구경〉은 서양의 철학자나 예술가, 사상가들 사이에 널리 퍼져갔다고 합니다.(이상은, 전재성 역주 〈법구경-담마빠다〉해제에서 참고 인용함) 어쩌면 톨스토이가 탐독한 〈법구경〉도 막스 뮐러의 번역본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요? 아무래도 좋습니다. 중요한 건, 어떻게 읽었는가-가 아닐까요?
〈법구경〉은 423편의 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읽자고 작정하면 하루 사이에 다 읽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이 〈법구경〉을 읽는데 그리 어려워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인터넷에서 이 경을 검색해보면 많은 사람들의 독후감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대체로 “마음에 담아 둘 만한 가르침”이라는 정도의 간단한 후기인 경우가 많습니다. 나는 불교학자가 아닌 보통의 독자들이 남긴 〈법구경〉 독후감이 무척 궁금한데 아직 인상적인 후기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읽어야 하며 얼마나 길고 진지한 독후감을 남겨야 하는지 정해진 룰은 없습니다. 다만 톨스토이의 〈인생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에 인용된 〈법구경〉 구절들을 음미해보자니, 독자도 책을 잘 만나야 하지만 책도 독자를 잘 만나야 합니다. 〈법구경〉이 톨스토이와 만난 것은 〈법구경〉과 톨스토이 양쪽에 다 행운이었음에 틀림없습니다.
무엇보다도 톨스토이는 〈법구경〉을 읽고 또 읽으며 자기의 언어로 다시 써보려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가령,
“나의 간절한 소망은 절대로 화를 내지 않는 것, 언제나 진실을 말하고 그 진실을 사랑으로써 누구도 상처받지 않도록 말하는 것, 성미가 급한 사람을 인내심으로 대하는 것, 정욕에 사로잡힌 사람들 속에서 정욕으로부터 자유로운 것, 이것이 바로 나의 간절한 소망이다(300쪽)”라는 문장을 보자면, 대체 이 구절이 〈법구경〉 몇 번째 게송일지 궁금해집니다.
너무 자기 마음대로 경전을 고쳐 쓴 것 아닌가 하여 불편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그는 미래의 독자들이 이렇게 생각할 것을 짐작한 듯 서문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지은이의 생각을 나 자신의 말로 바꿔 표현한 것도 있다. 내가 이 책을 세상에 내놓는 목적이 본디 지은이의 말을 앵무새처럼 따라 읊기 위함이 아니라 여러 저술가들의 위대하고 유익한 지적 유산을 많은 독자가 매일 쉽게 다가가서 읽고 최상의 생각과 감정을 얻도록 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톨스토이의 이 책을 통해 〈법구경〉이라는 불교경전을 처음 만난 동서양의 독자들도 많을 것이요, 그 자신도 수없이 〈법구경〉을 읽는 가운데 사색이 깊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법구경〉이 참 멋진 독자를 만난 것이 틀림없다니까요.
- 이미령 경전이야기꾼
톨스토이가 ‘법구경’ 을 애정한 까닭 !
인생 알고 싶었던 톨스토이
“나 자신이 주기적으로 되풀이해 읽을 책을 만들어야겠다. 에픽테토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노자, 부처, 빠스깔, 신약성경 등. 이는 모든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책이기도 하다.”
톨스토이가 56세이던 해 1886년 3월 15일 일기의 한 구절입니다. 톨스토이는 정말 책을 좋아한 사람입니다. 그가 읽는 책들은 좀 특별합니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어떻게 가치 있는 삶을 살다 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그런 책들입니다. 톨스토이는 그런 책들을 읽으며 밑줄을 긋고 옮겨 적으면서 생각이 깊어지는 행복을 맛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다 혼자만 읽기가 너무 아쉬워 수많은 사람들과 공감하고자 그 좋은 구절들을 일기형식으로 모아서 출간했습니다.
이 글들은 당시 사람들에게 큰 호응을 불러일으켰고 톨스토이는 몇 차례 제목을 바꾸고 내용도 보강하면서 평생 다듬고 또 다듬었습니다.
〈인생이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이 붙은 그의 책은 1200페이지가 넘습니다. 한 페이지씩 넘기면서 현자들의 좋은 말씀을 읽어가는 데 뜻밖에도 자주 붓다, 부처라는 출처가 눈에 띕니다. 무려 약 58가지 불교 경전 구절이 잡힙니다. 그런데 특별히 경전 이름 하나만이 도드라지게 눈에 띕니다. 그게 바로 〈법구경〉!
발췌해서 실어논 게송이 15편 정도입니다.
톨스토이의 종교는 러시아정교회입니다. 신을 섬기는 종교이지요. 그는 부유한 지주 집안에 태어나서 좋은 교육을 받고 젊은 시절에는 누가 봐도 한량인 듯 태평스레 세월을 보내고 도박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러다 군에 들어가서 전장에도 투입되는데 그 와중에도 글을 썼고, 마침내 소설가로서 아주 큰 인기를 얻습니다. 대문호라 칭해질만큼 성공한 인생입니다. 그런데 그 인생의 정점에서 그는 고개를 갸웃합니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이 지구 위에 내던져진 목숨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무엇이 진짜 삶이고,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가?
이 물음은 그의 인생 마지막까지 착 달라 붙어서 그는 이 질문에 대답을 구하지 않고는 어떤 일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성현들, 철학자들의 책에서 길을 찾고자 했지요. 열심히 읽고 옮겨 쓰면서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모색했습니다. 그가 읽고 좋은 구절을 옮겨온 텍스트로는 단연 기독교 성경이 압도적이지만, 애머슨, 소로, 아미엘, 루소, 플라톤, 쇼펜하우어 등등의 철학자들 책에서도 아주 많이 옮겨왔습니다. 동양의 책으로는 공자, 노자 그리고 불교입니다.
편히 살려면 편히 살다 갈 수도 있는 인생이었는데, 톨스토이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삶이 문득 내놓은 궁극적인 질문을 받은 순간 그의 평생은 대번에 뒤틀려 버렸습니다. 그의 이런 고뇌에 찬 인생에 부처님 말씀과 〈법구경〉 구절이 담겨 있다는 점이 불자인 내게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톨스토이가 소개하는 〈법구경〉 구절
그가 어떻게 〈법구경〉 구절을 필사했는지 소개합니다.
“자기 자신을 이기는 자는 싸움터에서 백만 군대에 이기는 자보다 위대한 승리자이다. 모든 타인을 이기는 것보다 자신을 이기는 것이 훨씬 낫다. 싸움터에서 남을 이긴다 해도 언젠가는 질 수도 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이기고 자기 자신을 다스리는 자는 영원히 승리자로 남을 것이다.”(299쪽)
“온유함으로 분노를, 선으로 악을, 인자함으로 탐욕을, 진실로 거짓을 정복하라.”(334쪽)
“인간은 스스로 죄를 범하고 스스로 악을 생각하며, 스스로 악을 멀리하고 스스로 마음을 정화한다. 죄에 빠지는 것도, 마음이 깨끗해지는 것도 오직 자신의 힘에 달려 있다. 남이 너를 구원할 수는 없다.”(428쪽)
“악인도 그가 행한 악이 아직 곪아 터지기 전까지는 행복하다. 그러나 그것이 곪아 터졌을 때 악인도 악을 의식할 것이다. 어느 누구도 악에 대해, 그런 것은 자기와 아무 상관 없는 거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한 방울의 물이 모여 항아리를 채우듯, 어리석은 자는 조금씩 악을 거듭해가는 동안 악으로 가득 차게 된다.
악은 바람을 향해 뿌린 먼지처럼 그것을 행한 자에게 되돌아온다. 하늘을 날아가도 바다에 들어가도 깊은 산 속에 숨어도, 인간이 자신이 저지른 악한 일에서 달아날 수 있는 곳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515쪽)
그가 살던 시절 러시아는 대혼란의 시기였습니다. 농노해방과 사회변혁의 욕구가 걷잡을 수 없이 끓어올랐고, 황제 일족은 비운의 마침표를 찍으려던 찰나였지요. 게다가 전쟁은 쉬지 않고 벌어졌습니다. 그 대혼란의 시기에서 과연 무엇이 세상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요? 톨스토이는 극도의 갈등과 살육의 세상에서 고민을 했고, 결국은 외부의 어떤 힘도 세상과 자신을 구원할 수 없으며, 인간들 각자가 악을 멈추고 선을 행하는 길밖에는 없음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그토록 경멸하던 신앙을 회복하게 됩니다.
그래서인지 그가 인용한 〈법구경〉 구절에는 ‘스스로의 책임’을 강조하는 분위기가 강합니다. 인간의 선한 의지만이 세상을 구원하고 자신을 행복하게 만든다는 부처님 정신에 압도된 것이 틀림없습니다.
서양으로 건너간 〈법구경〉
〈법구경〉은 불교경전 중에서도 가장 유명합니다. 서양에서도 일찍이 번역되었지요. 덴마크 학자 파우스 뵐이 1855년 빠알리어 〈법구경〉을 라틴어로 번역하여 유럽에 전파하면서 〈동방성서〉라고 불렸고, 근현대적 번역으로는 막스 뮐러의 영역(1870년)이 있는데, 이후 막스 뮐러의 번역본을 나름대로 윤문하면서 〈법구경〉은 서양의 철학자나 예술가, 사상가들 사이에 널리 퍼져갔다고 합니다.(이상은, 전재성 역주 〈법구경-담마빠다〉해제에서 참고 인용함) 어쩌면 톨스토이가 탐독한 〈법구경〉도 막스 뮐러의 번역본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요? 아무래도 좋습니다. 중요한 건, 어떻게 읽었는가-가 아닐까요?
〈법구경〉은 423편의 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읽자고 작정하면 하루 사이에 다 읽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이 〈법구경〉을 읽는데 그리 어려워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인터넷에서 이 경을 검색해보면 많은 사람들의 독후감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대체로 “마음에 담아 둘 만한 가르침”이라는 정도의 간단한 후기인 경우가 많습니다. 나는 불교학자가 아닌 보통의 독자들이 남긴 〈법구경〉 독후감이 무척 궁금한데 아직 인상적인 후기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읽어야 하며 얼마나 길고 진지한 독후감을 남겨야 하는지 정해진 룰은 없습니다. 다만 톨스토이의 〈인생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에 인용된 〈법구경〉 구절들을 음미해보자니, 독자도 책을 잘 만나야 하지만 책도 독자를 잘 만나야 합니다. 〈법구경〉이 톨스토이와 만난 것은 〈법구경〉과 톨스토이 양쪽에 다 행운이었음에 틀림없습니다.
무엇보다도 톨스토이는 〈법구경〉을 읽고 또 읽으며 자기의 언어로 다시 써보려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가령,
“나의 간절한 소망은 절대로 화를 내지 않는 것, 언제나 진실을 말하고 그 진실을 사랑으로써 누구도 상처받지 않도록 말하는 것, 성미가 급한 사람을 인내심으로 대하는 것, 정욕에 사로잡힌 사람들 속에서 정욕으로부터 자유로운 것, 이것이 바로 나의 간절한 소망이다(300쪽)”라는 문장을 보자면, 대체 이 구절이 〈법구경〉 몇 번째 게송일지 궁금해집니다.
너무 자기 마음대로 경전을 고쳐 쓴 것 아닌가 하여 불편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그는 미래의 독자들이 이렇게 생각할 것을 짐작한 듯 서문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지은이의 생각을 나 자신의 말로 바꿔 표현한 것도 있다. 내가 이 책을 세상에 내놓는 목적이 본디 지은이의 말을 앵무새처럼 따라 읊기 위함이 아니라 여러 저술가들의 위대하고 유익한 지적 유산을 많은 독자가 매일 쉽게 다가가서 읽고 최상의 생각과 감정을 얻도록 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톨스토이의 이 책을 통해 〈법구경〉이라는 불교경전을 처음 만난 동서양의 독자들도 많을 것이요, 그 자신도 수없이 〈법구경〉을 읽는 가운데 사색이 깊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법구경〉이 참 멋진 독자를 만난 것이 틀림없다니까요.
- 이미령 경전이야기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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