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c/5, 제9 일상무상분(一相無相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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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흰구름 작성일17-12-03 22:19 조회30,068회 댓글8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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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보리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사다함’의 경지에 이른 사람이 ‘나는 사다함과를 얻었다’고 생각하겠느냐?” 수보리가 대답했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사다함’이라는 명칭이 ‘한 번만 왔다 갈(한번만 윤회할) 사람’이라는 뜻이지만, 그러나 실제로는 왔다 간다는 생각이 없으므로 그 명칭을 ‘사다함’이라 하기 때문입니다.”
“수보리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아나함’의 경지에 이른 사람이 ‘나는 아나함과를 얻었다’고 생각하겠느냐?” 수보리가 대답했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아나함’이라는 명칭이 ‘오지 않음" 을 뜻하지만, 그러나 실제로는 다시 오지 않음이란 없기 때문입니다.”
“수보리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아라한>이 ‘나는 아라한의 도를 얻었다고 생각하겠느냐?” 수보리가 대답했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진실로 진리의 모양이 없음을 깨달아 다시는 미혹에 들지 않은 이를 아라한이라고 이름하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만약 <아라한>이 ‘나는 아라한의 도를 얻었다’는 생각을 한다면 곧 나·사람·중생·목숨에 집착하는 것이 됩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수보리가 다툼 없는 삼매(無爭三昧)를 얻은 사람 중에서 가장 으뜸이 되므로, 욕망을 떠난 첫째가는 아라한이다’라고 하시지만, 세존이시여 제 스스로는 ‘나는 욕망을 떠난 아라한이다’라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만약 ‘나는 아라한의 도를 얻었다’고 생각한다면, 세존께서 ‘수보리는 적정행을 즐기는 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시겠지만, 그러나 수보리가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으므로 ‘수보리는 적정행을 즐긴다’고 하십니다.”
제9분은 깨달음의 경지에 대한 허상을 깨뜨리고, 그 허상에 대한 집착을 끊게 하려는 가르침입니다. 위의 문답에 등장하는 4가지 수행단계에 대한 명칭은 초기불교와 부파불교에서 설명되던 수행자의 경지인 4과(果)에 대한 것입니다.
1과(果),수다원(Srota-apanna)-입류(入流), 예류(預流) ; 미혹을 끊기 시작함으로써 성자의 흐름 속으로 들어간 이라는 뜻.
2果,사다함(Sakrdagamin)-일래(一來), 일왕래(一往來) ; 한번 갔다가 오는 이란 뜻.
3果,아나함(Anaghamin)-출욕(出欲), 불래(不來), 불환(不還) ; 결코 돌아 오지 않는 이란 뜻 (욕계의 번뇌인 오욕5欲을 아주 떠나 욕계로는 되돌아 오지 않음).
4果, 아라한(Arhat)-응공(應供), 무쟁(無爭-갈등) ; 모든 번뇌를 다 끊은 이란 뜻. 번뇌가 없으므로 안팎이 고요하여 다툼(갈등)이 없으므로 큰 복전이라 응당 공양할만함 분이란 호칭을 씀.
Hinayana불교에서는 번뇌와 탐욕이 괴로움 두려움의 원인임을 알아 계정혜 삼학(學)을 닦아 마하반야(지혜의 완성)로써 해탈열반을 성취하는 과정에 단계별 수행 지위를 설명해 놓은 것이 4향 4과인데 그 중에,
1), 수다원과는 불법을 닦아 영원한 평안의 경지로 나아가기 시작한 단계입니다. 여기서는 불법에 대한 믿음이 확고해져 다시는 그 믿음이 약해지거나 물러나지 않고, 6경(境) 6진(塵) 6식(識)의 18경계(境界)에서 크게 흔들리지 않으며, 탐진치 3독으로 인한 무겁고 거친 번뇌에 사로 잡히지 않아 3악취(지옥, 아귀, 축생)로 떨어지는 일이 없이 약 7번의 환생을 거쳐 해탈법을 성취한답니다.
2), 사다함의 경지는, 번뇌와 욕구가 완전히 소멸되지는 않았으나 잠시 일으킨 생각에 집착하는 일이 없습니다. 말하자면 스스로 행한 일이나 대상에 대하여 잠시 생각을 내거나 되돌아 보는 일이 있더라도 흔들리거나 집착하는 일이 없어, 죽은 다음 한번 천상에 났다가 다시 인간의 몸으로 돌아와 해탈을 성취하게 된답니다.
3), 아나함은, 우리가 살고 있는 욕계의 번뇌(5욕-식욕, 성욕, 수면욕, 물욕, 명예욕)를 완전히 끊어 벗어났으므로 욕계로는 되돌아 오는 일이 없으므로 주춤하거나 되돌아 오는 일이 없이 향상일로의 필경에 도달할 때까지 색계나 무색계에서 머무른다 합니다.
4), 아라한은, 번뇌의 완전한 소멸에 이르렀으므로 더 이상 미혹 번뇌 욕구가 없으므로 '어긋난다(違), 맞는다(順)'는 마음이 없어 주관과 객관이 비고 안팎이 항상 고요하고 선명해 적정행 무쟁행 청정행을 하는 성자입니다. 부처님도 소승 4과에서는 아라한이라 합니다.
어떤 목적지를 정하고 고속도로를 달리는 사람이, 잠시 휴게소엘 들려서 머물러 버리는 일이 없고, 거기를 목적지로 착각지도 않지요. 비록 마지막 톨게이트를 통과한 사람일지라도 목적지에 도달했다고 멈추어 버리지는 않을 겁니다. 통과 지점을 목적지라 착각한다면, 그는 병원엘 가야할 사람입니다.
큰 깨달음을 목적으로 한 이는 결코 작은 체험이나 낮은 경지에 만족해 멈추출 수 없습니다. 다 깨달은 사람은 자기가 도달한 경지를 결코 자랑하지 않습니다. 자랑할 마음이 있다면 그는 相에서 놓아진 수행자가 아닌 것입니다. 다만 스스로가 늘 평온하고 자유로우며, 지혜와 자비로 조화롭게 살 뿐이지요.
수행에도 그 목적과 지향점이 각기 다르고, 그 수행 방법도 다양합니다. 심신의 휴식을 위한 수행도 있고, 정신적인 문제를 치유할 목적의 수행도 있으며, 어떤 신비한 영적체험이나 신통을 위한 수행도 있고, 또한 부처님처럼 존재와 실상의 깨달음이나 생노병사의 의문과 두려움에서 해탈하는 것의 성취를 위한 수행등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목적으로 수행을 하십니까?
댓글목록
홍원님의 댓글
홍원 작성일금강경에서는 첫째도 상을 깨버리는 것이고,둘째도 상을 없애 버리는 것이니 무엇을 더 말할 필요가 있겠습니까마는 부지런히 배우고 정진해 나간다면 최종 아라한과를 얻어지리라 믿지만 이또한 단순히 도달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긴다면 상이 아닐런지요? 법회인유분의 법회를 하시기까지부터 해공제일의 장로 수보리 보살께서질문하시며 답하는 전과정이 상에 머물지 말고 상에 집착하지 말라고, 상을 깨버리라는 말씀에 다시한번 관조해 보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지선행님의 댓글
지선행 작성일어디를 가야할지 목적지도 정해졌고.. 왜 가야하는지도 알고.. 어떻게 가야할지도 배웠었습니다. 앞서가신 분들의 섬세하고 자상한 길에 대한 바른 안내서도 제 손에 들려있고 기름을 가득 채운 성능좋은 차도 마련해 주셔서 길떠나기에 완벽한 준비가 갖춰져 있습니다 지금까지 받은 도움과 격려와 용기를 뒤로하고 이제부터 나홀로 내가 가야할 길을 향해 한눈 팔지 않고 달달한 커피한잔 들고 열심히 앞으로 달려 보겠습니다..
자현님의 댓글
자현 작성일저는 지금 보고 있습니다.과연 그대로 보고 있는지,아니면 내가 이전에 들었던 누군가의 말이나,나의 집착으로 하나가 아닌 여러개의 많은 잘못된 허상을, 사실인 것 처럼 헛되이 보고 사는 건 아닌지.부처님의 실상묘법을 알아차리도록, 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상을 갖는 저의 모습이 부끄럽습니다.
헛똑똑이님의 댓글
헛똑똑이 작성일저는 제자신을 알고 모난걸 다듬어 가는..그래서 마음만이라도 평안을 얻어 보고자 마음 관찰에 집중하려고 노력을 합니다. ‘수행’이라는 단어는 아직 온전히 무엇인가를 절실한 마음을 내어 해보지도 꾸준히 지속하지도 않았있기에 과분한 얘기이고 , 당장의 현실은 마음의 주인이 되어 살피기를 여유롭게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관념과 현실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기를 구하는 것이 제 수행 목표입니다. 이번 동안거 기도가 시발점이 되리라 믿습니다.
혜서원님의 댓글
혜서원 작성일나는 무엇을 목적으로 수행하는가를 생각해보았습니다. 스스로 한평생 쌓아놓은 교만과 편견, 오해에서 벗어나고 “바로 보기”를 하려고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삼독과 번뇌를 다스리고 싶습니다. 한편, 수행의 궁극적인 목표는 견성일텐데 아직 기초단계에 머물러서 그런지 한번도 심각하게 생각해본적이 없습니다.그래서 자성불을 믿는 것을 자꾸만 잊어버리나 봅니다.
남곡님의 댓글
남곡 작성일저의 수행의 목적은 걸림없는 자유롭게 살기 위함입니다
현오님의 댓글
현오 작성일아직 매일 현실속에서 오욕에 밀당하며 살아가는 저의 모습이 참으로 창피할 뿐입니다... 그리고 아직 제 수행의 신심이 대승의 뜻을 따르지 못하니 그또한 부끄럽고 수행 목적과 성취에 대한 믿음과 확신이 아직 미흡하니 이또한 부끄럽습니다. 한 허상의 마음을 돌이키는게 이렇게 힘든 일인가 생각해 봅니다. 매 삶의 순간 순간에 착각하지 않는 순수한 존재감 그 하나로 몰입해 살수 있기를 바라며 부처님 가르침을 놓지 않고 제 자신을 사랑하고 믿으며 무소의 뿔처럼 한걸음씩 나아가도록 하겠읍니다.
Green님의 댓글
Green 작성일상을 세우지 않는다면 이래도 저래도 괜찮을테죠. 항상 상을 세우고 분별하는 삶이 당연시되다보니 상을 세우지 않기가 참으로 쉽지 않습니다. 바른견해를 얻고 자비종자를 싹티워 가꾸기위해 노력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