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c/5, 제7 무득무설분(無得無說分) - 얻음도 설함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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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흰구름 작성일17-11-29 11:12 조회29,725회 댓글4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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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보리가 대답했다. “제가 부처님께서 설명하신 뜻을 이해하기로는 <가장 높고 바르며 원만한 깨달음>이라고 표현할 만한 고정된 진리는 없으며, 또한 여래께서 말씀하셨다고 할 고정된 진리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래께서 말씀하신 법은 모두 가질 수도 없으며 설명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진리도 아니며 진리 아닌 것도 아니니, 왜냐하면 일체 현인(賢人)이나 성인(聖人)들은 모두 무위법으로써 차별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7분은 가장 높고 바르며 원만한 깨달음(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대한 얘기입니다.
우리는 흔히 ‘깨달음을 얻는다’는 표현을 잘 씁니다. 요즘은 표현을 넘어 스스로 깨달음을 얻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많아졌고, 그 깨달음이라는 것이 어떻다고 포장해서 말하는 이들까지도 적지 않습니다.
심지어 깨달음이라는 것을 상품화하여 1단계 깨달음이니 2단계 깨달음이니 하며 수제명품 팔듯이 하는 삿된 이들까지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언젠가 정말 깊은 수행을 할 기회를 갖고 지금보다 나은 경지에 이른다면, 자신이 얼마나 우스운 짓을 하였는지를 알게 되겠지요.
부처님께서 수보리존자에게 던지신 질문은 참으로 심오합니다.
“내가 깨달음을 얻었느냐? 내가 진리를 설명했느냐?”
마침 문답의 상대자가 수보리존자 잖습니까. 반야(般若)를 성취해서 제일 먼저 알게 되고 반드시 터득하게 되는 이치가 바로 공(空)인데, 그 공(空)의 이치를 깨달아 가장 잘 해득한 것으로 부처님께 인가 받으신 해공제일(解空第一)이지요.
그와 같이 반야지혜를 갖춘 수보리존자는 곧바로 “부처님의 깨달음이라고 할 고정된 진리가 없으며, 여래께서 말씀하셨다고 할 고정된 진리도 없습니다”고 답하셨습니다.
<금강경>을 공부하는 이들이 많이 혼란스러워 하는 것이 바로 이런 부분인것 같습니다. “부처님은 분명 깨달으신 분이라는 뜻이고 경전은 부처님께서 그 깨달음을 설명한 것이라고 알고 있는데, 깨달음이라고 할 진리도 없고 설명한 진리도 없다니 이게 무슨 말장난입니까?”
통찰하는 사유의 힘이 길러져 相을 제대로 이해하고 깨달은 경지가 아니라면, 어쩌면 혼란스러움과 당혹감을 느끼고 이렇게 묻는 것이 당연한 것일 겁니다.
학자들과 학생들 사이에 교(敎)와 교학(敎學)을 동일시하는 경우를 흔히 봅니다. 그러나 교(敎-가르침)는 배우는 대상이 아니라 알아들어야 할 말씀이며 나아가야 할 길입니다.
경(經)에서 가리키고 있는 자리는 이론적으로 분석하고 종합하는 등의 학문으로 도달할 수 있는 곳이 아니고, 이해한 다음 실천하고 체험해서 검증하는 자리입니다. 그래서 신해행증(信解行證-믿음,이해,수행,증명)을 불자의 바른 신행자세로 정해 놓은 것이지요.
수행실천으로 안목이 열리면 교를 제대로 알아 듣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 안목을 ‘경전의 진실을 보는 지혜의 눈’ 인 경안(經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經安을 갖추어야사 진정한 뜻이 보입니다.
휴정서산 대선사는 <선교결(禪敎訣)>에서 “교(敎)는 말로써 말 없는 곳에 이르게 하고, 선(禪)은 말 없는 것으로써 말 없는 곳에 이르게 한다”고 하셨습니다. 참 적절한 말씀이라고 봅니다.
여기서 '말 없는 곳’이라는 것이 의미하는 바가 깊습니다. 즉 언어로 이해될 수 없고 남에게서 얻을 수도 없는 경지인 <깨달음>이라는 뜻이지요.
수보리존자도 서산대사와 같은 말씀을 하셨다. “여래께서 말씀하셨다는 진리는 어느 것이나 가질 수도 없으며 설명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깨달음>은, 이론으로 도달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라는 뜻 !
이어지는 수보리존자의 부차 설명도 말의 관념에 끄달리지 말고 그 뜻을 직시해 보시기 바랍니다.
“부처님의 깨달음과 깨달으신 법(法)은 진리도 아니며 진리 아닌 것도 아니다.”
이해 하셨습니까? 논리로 이해를 도와 드리자면, 깨닫지 못한 사람에게는 체험치 못했으니 없는 것이며, 깨달음에 이른 이에게는 체험한 것이니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성문·연각·보살등 성현의 호칭도 다만 경지에 따라 붙인 임시적인 이름일 뿐이지, 그런 고정된 깨달음이 있다는 뜻은 아니란 겁니다.
결론적으로 깨달음은 밖에서 얻을 수도 없고 깨닫기 전에는 이해할 수도 없으니, 진지하고 성실하게 수행하여 체득합시다.
댓글목록
홍원님의 댓글
홍원 작성일“부처님의 깨달음과 깨달으신 법(法)은 진리도 아니며 진리 아닌 것도 아니다.”
깨닫지 못한 사람에게는 체험치 못했으니 없는 것이며, 깨달음에 이른 이에게는 체험한 것이니 없는 것이 아니다.
마장에 빠지지 않고,초발심이 지속되도록 늘 깨어있는 마음으로 자기점검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가슴 깊이 새기겠습니다.
자현님의 댓글
자현 작성일저는 부처님의 법을 쉽게 다가가고 싶습니다.멀리 있지 않고,'내 가까이 있다' 생각됩니다.내 상을 버리기 보다는 바로 보겠습니다.그 안에 부처님의 법이 있으리라 봅니다.
지선행님의 댓글
지선행 작성일고정된 진리가 있다 없다 함도.. 깨달음의 자리에 있다 없다 함도... 저에겐 낮설고 어려운 일 입니다. 진리를 알기위해... 깨달음을 알기위해... 집착하고 욕심내기보다는 내생각 내주장에 갖힌 이기적인 시선으로실상을 바라보던 나를 알아채어 바른시선 중심잡힌 시선으로 실상을 바로볼수있기를 바래 봅니다()
운오도님의 댓글
운오도 작성일부처님의 법을 계속 제 아름알이로 해석을 하려고 하다보니 너무 관념적인 부분에 국한이 되고 어렵다라고 하는 상에 갖히는 제 모습을 발견하곤 합니다. 다시 머리로 이해하는것을 멈추어보고 제 일상생활에서 어떤 부분이 그나마 부처님 법에 맞는 행동을 하고 있나 짚어보았습니다. 다행히 며칠전부터 시작된 100일 정진으로 제가 해보겠다고 한 수생지침서에 남에게 용서를 바라는 마음이 하나의 예가 되었습니다. 며칠전부터 같이 일하시는 분하고 감정적 마찰이 있었는데 감정골이 깊어져서 그분이 저에게 그분의 불편함을 표현하신 문자를 보내셨습니다. 저는 저대로 제가 잘못한게 없다고 생각하고 있던 참이라 문자를 보는 순간 화도 나고 억울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정말 조목조목 따지려고 메세지를 작성하고 있는 중에 불현듯 그전날 저녁 기도 마치고 꾼 꿈내용이 떠올랐습니다. 혹시나하는 마음에 내용을 검색해보니... 제가 누군가하고 언쟁이 있을 그런 내용의 꿈이였던 것이였습니다. 신기하기도 하고 그래서 이런 상활이 벌어지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제가 들고 있는 전화기를 한번 더 쳐다보았습니다. 이미 내가 이런 상황에 들어갈것을 꿈으로 보여주셨다면 굳이 내가 언쟁의 씨앗을 만들 필요가 있는가? 라는 생각... 성남이라는 한생각에 요목조목 따지고 내가 옳고 니가 그른것이니 하는 시시비비를 가리고 싶은 아상이 과연 필요한것인가? 하는 생각에 도달하고 부처님이 바라시는건 이런 상황을 지혜롭게 풀어가는 제 용기가 아닐까하는 생각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몇번을 그 분이 보내온 문자를 들여다보며 그분이 가지고 계신 섭섭함, 그리고 성냄 을 불러일으킨 제 말과 행동과 생각에 대한 용서를 바라는 맘으로 사과 문자를 보냈습니다. 결과는 오늘 밤 늦게 온 답변인데.. 그쪽도 성냄이 수그러들고 대화를 원하셨습니다. 정말 부처님께 감사드리며... 잘잘못을 가려서 나를 내세우겠다는 아상을 버리는 맘을 주시고 그 상황이 어찌되었던지간에 이런 분쟁속에서도 내 잘못을 먼저 바라보고 미안하게 생각할수 있는 생활속의 깨달음을 주신 부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제가 금강경을 공부하며 제 아름알이로 알수 없는 구절로 막힐때 먼저 행해보는 도리를 먼저 깨닫는 그런 부지런한 불자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