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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14 제1, 법회인유분(法會因有分-법회가 있게된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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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흰구름 작성일17-11-12 22:40 조회30,669회 댓글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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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디 한 책으로 된 것을 양(梁)나라의 불교학자인 소명태자(昭明太子, 501~531)가 32분(分)으로 나눴다 함.

제1, 법회가 있게된 인연(法會因有分) 

如是我聞 一時 佛 在舍衛國 祇樹給孤獨圓 輿大比丘衆 千二百五十人俱 爾時 世尊 食時 着衣持鉢 入舍衛大城 乞食 於其城中 次第乞已 還至本處 飯食訖 收衣鉢 洗足已 敷座而坐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부처님께서 사위성의 기수급고독원에서 훌륭한 비구스님들 천이백오십명과 함께 계셨다. 이 때 세존께서는 공양 때가 되어 가사를 입으시고 발우를 드시어 사위대(슈라바스티)성에 들어 가셔서 탁발을 하시며 순서대로 밥을 비신 후, 본래 계시던 수행 거처로 돌아 오시어 공양을 드신 후 가사와 발우를 거두시고, 발을 씻으신 다음 자리를 펴고 고요히 앉으셨다.

이 부분은 <금강경>이 시작되는 도입부 즉, 서분(序分)이며 법회가 있게 된 인연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입니다. 보기에 일상을 묘사한 평이한 내용으로 보일 것이나, 눈 뜬 자리에서 보면, 금강경의 대의와 진수가 여기에 다 나타나 있다고 봐야 합니다. 그러니 만약 이 부분을 보고 마음이 열려 부처님을 만난다면 여기서<금강경>을 끝내도 됩니다. 

이 대목이 바로 한결 같으셨던 부처님의 모습을 중계한 것입니다. 이것을 법의 안목으로는 여여(如如)하다고 표현합니다.  

부처님께서 탁발을 나가시는 것은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심입니다. 그러므로 수많은 사람과 사건등의 인연을 만나지요. 

따라서 수많은 대화가 있었을 것이고, 수많은 상황들이 전개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현상의 문제지요. 현상이란 무수히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집니다. 

그 모습들에 끌려 다니면 불안정하고 괴로울 수밖에 없는 도리를 다 아시지요. 그러므로 그 수많은 현상들의 실상을 통찰하시고, 그러시기에 정념과 평정의 본질인 적정(寂靜)에서 벗어남이 없이 일생 여여함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부처(佛-BUDDHA)는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부처님의 생애를 죄다 추적하고 아무리 상세히 서술한다고 해도 거기엔 부처님이 계시지 않습니다. 다만 그림자를 그려 본 것이며, 그저 흔적을 따라가며 각자의 경지로 느낄 수 있는 것일 뿐입니다.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경지도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비록 팔만대장경을 샅샅이 훑어보아도 깨달음 자체는 거기 없습니다. 그러므로 객관적 존재로서의 깨달음은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더러 타인의 체험을 무수히 되풀이하여 듣다 보면 마치 자기의 체험인 양 착각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단언컨대 허상일 뿐이지요. 오직 스스로가 같은 경지를 체험해 봐야 하는 것 뿐입니다. 

 

거듭 설명합니다. <금강경>은 특이하게 의식주(衣食住) 얘기로 시작한, 도입부에 생존의 일상을 다룬 하나의 경입니다. 

옷(衣)은 걸식 나갈 때 가사(袈裟)를 걸치는 것이고, 식사(食)는 걸식하여 먹는 것이며, 집(住)은 대중 수행처인 <기원정사>입니다. 

말하자면 우리 중생들의 삶과 같이, 수행자들도 의식주로 현상적 삶을 꾸려가는 것이 기본 모습이란 것을 다루었네요. 수행자들의 기본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여겨집니다. 

불교에서의 걸식(乞食)은 단순히 밥을 비는 비굴한 행위가 아닙니다. 진지하고 치열하게 수행한 것을 일반 재가자들과 나누는 소통의 시간인 것입니다. 

부처님 이전의 수행자들도 그렇게 해 왔던 것이 인도의 전통이었지만, 부처님께서는 걸식을 법회와 같은 수준의 중요한 시간으로 봤기에 법회 때와 마찬가지로 대가사를 입었셨다고 봅니다.

현재 남방의 탁발의식은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이 관행이지만(자기의 수행의장선으로 굳어진 것으로 보임) , 부처님 당시의 탁발은 상담과 다르마 토크 시간을 겸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경전에는 부처님께서 탁발을 나가셨던 때에 일어난 많은 얘기들이 있으니까요. 

현재는 이 걸식의 정신이 불공(佛供)과 기도로 이어졌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불공과 기도를 통해 스님들은 신도와 만나며 아울러 갖가지 상담을 하기도 하지 않습니까?

당시 부처님의 제자들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안거기간, 집단생활을 했습니다. 안거의 집단수행은 부처님이나 장로스님(오랜 수행으로 지혜와 덕이 깊은 연장자)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 흔적으로 석존 당시의 죽림정사(竹林精舍), 기원정사(祇園精舍), 대림정사(大林精舍), 영산회상(靈山會上) 등의 유적이 남아 있고 그 이후로도 아잔타나 엘로라 등의 집단 수행처가 있었던 것입니다. 

안거와 집단수행은 혼자 수행할 때의 여러 가지 위험 요소를 예방하기 위함이었지요. 만일 대중처소가 아닌 곳에서 스승도 없고 탁마할 도반들도 없이 지낸다면 바람직하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대중이 스승이고 도반들이 스승이 되는 법인데, 수행이 얕은 상태에서 스승도 없이 마음대로 사는 것은 수행자의 좋은 태도라고 보기 어렵다 여깁니다. 

설혹 재가자라도 혼자 살면 아무래도 흐트러지기 쉽게 되기 마련 아닐까 싶네요.

석존께서는 출타하실 때와 법회의 법문을 하실 적에는 대가사를 착용하셨고 제자들에게도 그런 위의를 갖추도록 규율을 정하셨습니다. 

그것은 중생들의 분별심을 지나치게 거스르지 않는, 말하자면 모양으로 얕보거나 불신해서 법을 듣지 않아 아예 진리의 법을 인연 지을 기회 조차 없게 되는 일을 방비한 자비 방편이었던 거지요.

다 알다시피 절대 다수의 사람들은 먼저 외모와 형색으로 신뢰의 여부를 판단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흐트러진 복장을 하고 다니면 누가 봐도 수행자 답지 못하다는 생각을 할 것이고, 상대로 하여금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하는 것은 전법이나 포교의 성공에 장애되는 요소이지요.

그래서 부처님 재세시와 마찬가지로 이 시대 우리들도 조계종단의 출가승이 될 때, 꽤 많은 시간과 날들에 복색과 언행에 대한 습의 교육을 받습니다.

세속의 이익을 도모하는 장사나 사업을 하는 재가자도 상담자에게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면 성공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출가자와 재가자의 모습은 비록 다를지라도 삶을 영위하는 이치는 같음을 보여 주십니다.

현재 조계종의 의례 역시, 여법한 발우공양을 할 때, 그런 정신을 계승한다. 전통적인 발우공양을 할 때는 장삼과 대가사를 착용하고 <소심경>을 외운다. <소심경>의 내용은 부처님의 일생을 요약한 것과 불보살의 명호를 외워 그 은혜를 기리고, 공양물이 자기에게 올 때까지 수고한 모든 이들에게 감사하며, 아울러 아귀까지도 배려하면서 자신의 공부를 돌아보고 반드시 성불하겠다는 원력을 굳건히 한다. 공양이 끝날 때까지는 <소심경> 외의 어떤 말도 허용되지 않는다.

부처님께서는 식사를 마친 후에 대가사를 벗으시고 발우를 거두신 후 이윽고 발을 씻으셨습니다. 그것은 부처님께서 맨발로 다니셨기 때문에 씻으신 것이기도 하지만, 가부좌 하시고 정념의 평정에 드시는 일종의 의례행위가 아니었을까...하고 쓸데 없는 의미를 만들어 봅니다. 

이 <금강경> 제1분에 이미 부처님께서 가장 깊은 반야바라밀의 모습을 그대로 다 보여 주셨다 봅니다. 

 

사도나 외도들의 곡해처럼, 수행하는 것이, 또는 도를 닦는 일이 의식주를 초월하고 신비하거나 특별한 초월적 모습이나 목석처럼 되는 것이 아님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대목이기도 하지요.

 

의식주(衣食住)의 일상에서 다니고(行), 머물고(住), 앉고(坐), 눕는(臥) 현상(事)으로는 묘용(妙用)으로 중생을 거스르지 않았고, 본성(理)으로는 항상 진공(眞空)을  벗어남이 없는... 이것이 바로 우리 부처님의 전법 교화 49년의 여정이었습니다. 

 

<금강경>의 이 부분에서 부처님을 만날 수 있는 사람은 참으로 수승한 대승의 경지에 있는 분임에 틀림 없습니다.

그것은 언어와 생각 이전, 본래면목(本來面目)의 소식입니다.

<如是~>에서 마음이 열리면 바로 진리의 모습, 여래(如來)를 확인할 것입니다. 

댓글목록

남곡님의 댓글

남곡 작성일
부처님 행 자체가 무언의 법이라고 여겨집니다.
또한 이런 부처님의 행주좌와의 모습을 법의 눈으로 보고
불법은 늘~ 우리 일상생활과 함께 한다고 
후세의 중생을 위해 남겨주신 분들께 이번을 통해 감사함을 표합니다()

자현님의 댓글

자현 작성일
진언을 할때,관세음 보살 정근을 할때에 마음의 편안함을 느낌니다.그래서 자주하게 됩니다.제 꼬라지가 반복될때, 그순간에 관세음 보살 정근이 저절로 나올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보살이 통증을 호소할때, 함께 관세음 보살 정근을 했습니다.금강경을 공부하면서 저의 미련한 꼬라지를 내려 놓도록,그 부끄러움을 알도록 공부하겠습니다.나무 관세음보살

운오도님의 댓글

운오도 작성일
틀에 맞추어서 기도는 언제 어떻게 해야한다고 규정짓고 오랜 시간을 소요해야지만 참다운 수행과정이라고 생각하던 저였습니다. 그렇게 나름 어리석은 규정을 만들고 보니
자꾸 핑계를 대면서 기도를 게을리 하고 부처님이 저 먼곳에 계신것처럼 혼자 외로워하고 괴로워했던것 같습니다. 그냥 운전하는 중이나 밥하는 순간이나 손님과 이야기하고 뒤돌아 서는 그 순간 부처님 생각하고 감사드리는것이 제일 참다운 수행과정이 아닌가 싶습니다. 부처님에 대한 완전한 믿음이 있다면 방식이나 시간이 중요한게 아니라 이런 생활속 찰라의 기쁨이 저를 깨달음으로 데려갈거라 믿습니다.
부처님에 대한 온전한 믿음...

지선행님의 댓글

지선행 작성일
부처님의 소소한 일상의 여여함에서 깨달음을 얻을수 있음이 특별한 사람들의 특별한 신심과 수행이 깨달음에 다가가기 쉬우리라 생각했던 저의 무지를 단박에 깨뜨려 주셨네요. 금강경을 받고 나서야 읽어볼 엄두를 내어 처음으로 금강경을 뵈었는데 법이 뗏목과 같은줄 알라 하신 말씀에 내가 지금 서있는 이곳이 강인지 아님 산인지 사유하게 합니다. 산턱에 올라서서 강이라 착각 하는것은 아닌지 나를 되돌아보고 점검해야 할듯 합니다...

덕현님의 댓글

덕현 작성일
부처님의 일상이 수행이시고 탁발하시어 드시는 한끼의 공양도 허투루 신세짐이 없으십니다.

Green님의 댓글

Green 작성일
항상 같이 수행하시며 부처님을 존경하셨던 수보리존자께서 새삼스레  "희유하십니다. 세존이시여!" 하신 뜻을 통쾌하게 느낄수 있도록 해 보겠습니다.

현오님의 댓글

현오 작성일
여러 수승한 스님, 조사 스승들께서 금강경의 첫부분에 부처님의 모든 법이 다 나왔다고 말씀들 하셨습니다.  제 살림살이로는 불법이 특별한 철학적인 추상적인 심오한 사상, 종교적인 측면보다 바로 우리가 매일 살아가는 현실 자체라는 점을 깨닫게 해주는것 같읍니다.  하지만 부처님의 그저 평범한 바깥 삶의 모습에 단순한 결론을 짓는 착오는 안되고 부처님과 같은 마음자리 올라 이 경을 볼수 있는 수행의 완성이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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