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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7/ 금강반야바라밀의 뜻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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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흰구름 작성일17-11-06 19:48 조회31,645회 댓글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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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0년이 넘게 지속된 길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길가에 작은 마을들이 있었으나, 점차 마을이 커지더니 이윽고는 거대한 도시들이 생겼지요. 

 

그 길의 이름은 반야(般若, Pranya, 지혜-완전한,초월적)입니다. 

만약 <반야>라는 길이 없었다면 2600여년 역사의 불교는 없을 것입니다.

 

외형적인 길의 모습은 많이 달라지긴 했으나 그 역할은 한결같았습니다. 

부처님의 아주 간단한 말씀도 반야의 길이고, <화엄경>과 <법화경> <열반경> 등의 수많은 경전도 바로 반야의 길입니다. 

 

초월적이며 완전한 지혜인 <반야>는 불교의 가장 큰 특징이며, 다른 종교나 철학사상과 다른 특징이기도 합니다. 

 

언제부턴가 세간에서 지혜라는 말을 누구나 다 사용하고 있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그 내용은 반야와는 좀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초월적 지혜’ 또는 '완전한 지혜'라고 풀어 봅니다. 이 때의 초월이란 ‘지식과 일반적인 체험의 범주를 초월’ 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반야(般若)’에 대한 가장 소상한 가르침은 직접적으로 ‘반야(般若)’라는 용어를 제목에 넣고 있는 ‘반야부 경전’입니다. 이 반야부 경전의 대표적인 경이 <대반야경(大般若經)>인데 600부로 이루어져 있어서 ‘600부 반야경’이라고도 합니다. 

<금강경>은 이 600부의 제577번째인 ‘능단금강분(能斷金剛分)’에 해당됩니다. 보살의 수행인 6바라밀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는 <대반야경>은 전체가 16회로 구성되어 있는데, 2~10회가 먼저 한문으로 번역되어 중국에 유통되었고, 나머지는 현장스님이 인도를 다녀온 뒤에 비로소 번역된 것입니다.

그런데 <금강경>에 해당되는 제577분의 ‘능단금강분’은 <대반야경>의 제9회에 해당되는 것이므로, <대반야경>보다 먼저 구마라집스님 등 네 분 스님에 의해 한역되어 유통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한편 4~5세기에 인도에서 활동했던 무착(無着-Asaga)스님의 <금강경론(金剛經論)>과 세친(世親-Vasubandhu)스님의 <금강경 27단의설(斷疑說)>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이미 인도에서부터 독립된 경으로서 유통되었다고 보아 집니다.

<금강경>은 인도의 산스끄리뜨(Sanskrit)어로 삼백게송(300偈頌)이 되기에 <삼백송 반야경>이라고도 하는데, 옛 스님들은 이것을 독송하기에 아주 적정한 분량으로 보았다 합니다. 

또한 그러면서도 아주 짜임새 있게 구성되어 <대반야경>의 백미로 봅니다. 특징적으로 <금강경>에는, 다른 반야부 경전에 있는 소승(小乘), 대승(大乘), 공(空), 불성(佛性) 등의 용어가 보이지 않고 오직 잘못된 것(견해 관점 상相)을 부수어 반야를 드러내는 것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 연장선에서, 모든 경(가르침)을 대할 때와 마찬가지로 단지 말이나 글, 이론 지식으로서 <금강경>을 보아서는 안 된다는 점을 무수히 되풀이하여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부처가 설명한 반야바라밀은 곧 반야바라밀이 아니며 그 표현이 반야바라밀이니라(佛說般若波羅蜜 則非般若波羅蜜 是名般若波羅蜜)”고 한 부분 등이지요. 

이것은 <금강경>이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그 자리에 들어가 부처님과 같은 반야지혜를 쓰라는 가르침이기 때문입니다.

불교신도 가운데 <금강경>이나 <법화경> 등등을 여러 번 독송한다는 말을 자랑스레 하는 분들을 더러 만납니다. 어떤 분은 하루 10번 이상 10년 20년을 독경하는 일을 기도처럼 하는 분도 있고요.

그래서 제가 반가워 하며, 한 구절의 뜻이나 경의 핵심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그건 잘 모른다 합니다. 저는 늘 한 구절이라도 그 뜻을 바르게 깨닫는 것이 가장 좋다고 말해 주곤 합니다만 그 뚯을 공부하여 실행할 기미는 보이지 않더군요.

이처럼 한국 불자님들은 <금강경>을 다라니 외우듯 하는 이들이 많은데, 비록 효율적 방법은 아니나 깊은 인연을 심는 일이긴 하겠지요. 아마도 그만큼 <금강경>이 친근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불교가 다른 종교와 가장 크게 다른 것은, 믿음을 강조하기보다는 깨달아 부처가 되기를 권한다는 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한 편으로 그러기 위한 과정으로 3보에 대한 믿음도 강조를 합니다는, 그 믿음마저도 스스로 부처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이기에 권하는 것이지요. 

우리가 스스로 깨달아 부처가 될 수 있는 까닭은 우리에게 부처님과 동일한 반야지혜가 있기 때문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다만 중생이 부처님과 다른 점은, 그 반야지혜가 자신에게 있음을 모르고, 믿지 않아 업의 놀음에 빠져 아직 무가보의 보배를 사용하지 못한다는 점이지요,  

만약 세상의 모든 지식을 습득 해야만 부처가 된다거나 팔만대장경을 다 외워야 부처가 된다고 한다면, 과연 누가 부처가 되겠습니까?

하지만 자신에게 감춰져 있는 반야지혜를 찾아내어 쓰는 것은 누구나 믿고 노력하면 가능한 일이 됩니다.

중생이 반야지혜를 쓰지 못하는 것은 번뇌 때문인데, 이 번뇌마저도 스스로가 만들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명확하게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 이 <금강경>입니다.

 

 

  <금강경>이 중국에서 번역된 것으로는  6종류가 있음.  

1) 구마라집 역 <금강반야바라밀경>- 최초 번역 : 한국 중국 일본 주로 독송

2) 보리유지스님 역 <금강반야바라밀경>                              

3) 진제(眞諦)스님 역 <금강반야바라밀경>                              

4) 달마급다스님 역 <금강능단반야바라밀경>                            

5) 현장(玄裝)스님 역 <능단(能斷)금강반야바라밀경>                      

6) 의정(義淨)스님 역 <불설(佛說)능단금강반야바라밀경>

금강경의 원 제목 : Bazra chedika Praznya Paramita suttra(바즈라 체디까아 쁘라즈냐아 빠아라미따아 수우뜨라)

‘Bazra’는 다이아몬드이며, ‘chedika’는 ‘잘 자른다’는 뜻이다. ‘Praznya’는 초월적 지혜인 반야(般若)이며, ‘Paramitta’는 ‘완성(完成)’의 뜻으로 열반(Nirppanya)의 세계에 이르는 것을 가리킨다. ‘Suttra’는 ‘지름길’과 ‘바른 길’의 중의어인데, 부처님의 가르침(經)은 진리에 이르는 지름길이 되고 해탈·열반에 나아가는  바른 길이라는 뜻. 

이것을 중국식으로 옮길 때 <금강반야바라밀경> 또는 ‘Chedika’의 뜻을 살려 능단(能斷-잘 자른다)이라는 단어를 넣기도 함. 그러나 금강(金剛) 그 자체에 잘 자르는 성질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능단’을 빼고 <금강반야바라밀경>이라고 해도 뜻에는 변함이 없음.

금강(金剛)= 다이아몬드. 이 다이아몬드는 ‘반야’를 설명하는 것인데 반야가 불성(佛性, 부처성품)에서 비롯되므로 불성(佛性)을 가리키는 말도 됨. 

다이아몬드에 있는 몇 가지 특징은, 가장 강한 자연물이므로 다른 자연물에 의해 훼손되지 않으며, 가장 강하기에 무엇이든지 부술 수 있으며, 또 예로부터 투명하게 맑고 또한 가장 고귀한 보석이라고 봅니다. 아마도 우리에게 감춰져 있는 반야지혜 역시 이런 특징이 있다고 살핀 것 같습니다.

반야(般若)는 지식과 경험의 한계성을 뛰어 넘는 지혜의 완성을 말합니다. 어두울 땐 두려워도, 밝아지면 그 두려움이 사라져 없어집니다. 

두려움이 없으면 그릇된 생각을 하지 않게 되고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되지요. 또 맑은 거울에는 모든 것이 그대로 비치듯 반야도 있는 그대로를 보는 직관적 지혜를 말합니다.

바라밀(波羅蜜)은 ‘도피안(到彼岸)’ 즉 괴롭고 고통스런 이 언덕에서 자유롭고 평화로운 세계인 저 언덕으로 건너 간다는 뜻입니다. 

실다운 반야는 모두의 삶속으로 녹아 들어 자신과 타인의 삶을 정화시키는데, 그것을 일컬어 바라밀이라고 정의해 봅니다.

경(經)은 부처님의 말씀을 기록한 것이지요. 부처님은 행복에 이르는 바르고 정확한 길을 중생들에게 제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경에 의지하여 닦으면 반드시 선명하고 평화롭고 안락한 상태, 즉 깨달음의 자리에서 보는 본래의 '참 나' 즉 불성을 알게 됩니다.

이 제목대로 <금강경>은 완벽한 반야의 지혜로 해탈에 이르게 하는 가르침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집착과 분별을 끊게 하고, 영원히 자유롭고 행복한 세계인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최상의 가르침이라 확신합니다.

 

 

댓글목록

지선행님의 댓글

지선행 작성일
금강경이란 경의 내용이나 품고있는 깊은 뜻을 알지못했던 제게 스님의 답은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 였습니다 . 
이제 참나를 찾는 공부를 금강경과 더불어 하게 되었으니 제 목에 걸린 진주목걸이의 진정한 주인으로 거듭나기를 바래봅니다.()

Green님의 댓글

Green 작성일
번뇌를 금강저로 가차없이 내리쳐 잘라버리면 그곳에 영롱히 존재를 드러낼 금강반야여! 나를 데려다주오. 날 데려다주오. 니르바나로...

자성화님의 댓글

자성화 작성일
무엇이든 부술 수 있는 내 다이아몬드가 넘 마음에 듭니다^^. 그러나 쓸수 없는 다이아몬드는 무용지물이겠지요. 너무 매력적인 말, '반야 지혜', '직관적 지혜' 를 꼭 성취하고 싶습니다.

남곡님의 댓글

남곡 작성일
스님의 법화경의 묘 와 금강경의 금강의 비유하실때 저는 경을 공부할 준비가
되었습니다
열심히 배우고 익히겠습니다()

최하연님의 댓글

최하연 작성일
금강경을 처음 접해을때 그 난해했던 기억이 새록 떠오릅니다. 수수께끼와 같았던 부처님의 말씀에 도데체 무엇을 말씀하시는걸까하고 여러 스님들의 강의를 검색하고 보기도 했었습니다. 절대 지혜와 지식적 지혜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깨달아지는 과정을 이번 금강경 공부를 통해 이뤄지기를 기원합니다

자현님의 댓글

자현 작성일
세상에 그 무엇이든 자르고 끊을 수 있다함이 보입니다.나의 자만을 나의 것을 자르도록 금강으로 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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