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념처(念處) 4정근(精勤) 4여의족(如意足- or 神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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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흰구름 작성일17-07-25 13:27 조회32,323회 댓글3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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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4념처(念處)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비구들아, 이것은 모든 중생을 청정하게 하고, 근심과 탄식을 건너게 하고, 육체적 괴로움과 정신적 괴로움을 사라지게 하고, 올바른 길을 터득하게 하고, 열반을 실현하게 하는 유일한 길이다. 그것은 곧 4염처이다.
무엇이 4염처인가?
비구들아, 비구가 몸에서 몸을 관찰하면서 머문다. 세간에 대한 탐욕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고, 근면하게 분명한 앎과 알아차리기를 지니고 머문다.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면서 머문다. 세간에 대한 탐욕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고, 근면하게 분명한 앎과 알아차리기를 지니고 머문다.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면서 머문다. 세간에 대한 탐욕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고, 근면하게 분명한 앎과 알아차리기를 지니고 머문다.
현상에서 현상을 관찰하면서 머문다. 세간에 대한 탐욕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고, 근면하게 분명한 앎과 알아차리기를 지니고 머문다.”
<디가 니카야 22, 大念處經>
4염주(念住) · 4의지(意止)라고도 한다. 네 가지 알아차리기(ⓟsati)의 확립, 즉 몸(身) · 느낌(受) · 마음(心) · 현상(法)을 있는 그대로 관찰해서 알아차리기를 확립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면서’는 몸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변화의 순간 순간을 놓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관찰한다는 뜻이고, ‘탐욕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고’는 2분법의 분별을 버린다는 뜻, ‘현상에서 현상을 관찰하면서’는 매 순간 끊임없이 생멸을 거듭하는 안팎의 현상을 지속적으로 관찰한다는 뜻이다.
알아차리기는 사티(ⓟsati)의 번역이다. 사티는 ‘지금 이 순간의 현상에 집중해서 그것을 어떠한 판단도 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알아차리고 그냥 지켜보기만 하는 것’이다. 지금 어떠한 현상이 일어나든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든지, 매 순간 그것에 집중해서 알아차리는 것이다. 온갖 생각을 내려놓고 매 순간 ‘지금 이것’에 집중하고, 지금 하고 있는 일에만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
‘판단하지 않는다’는 것은 ‘좋다/싫다’ 등을 분별하지 않는다는 뜻이고, 분별한다는 것은 감정이 개입되었다는 뜻이다. ‘좋다/싫다’ 등을 분별하면 좋은 것에는 탐욕이 생겨 집착하게 되고, 싫은 것에는 분노를 일으키게 된다. ‘지켜보기만 한다’는 것은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4염처는 몸 · 마음 · 느낌 · 현상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생멸을 끊임없이 알아차림으로써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여 불건전한 영상(映像)이나 관념이 일어나지 않게 하고, 탐 · 진 · 치가 침입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지금 몸-마음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모든 현상을 매 순간 하나도 빠뜨림 없이 알아차려서 그것이 모두 무상 · 고 · 무아라고 통찰하게 되면, 몸-마음에 대한 집착이 점점 희박해져가고, 그것들의 속박에서 점차 벗어나게 된다.
이 알아차리기는 사마타(ⓟsamatha, 止)와 위팟사나(ⓟvipassanā, 觀)의 바탕이 되고, 위팟사나는 열반으로 가는 수행이므로 초기 불교의 수행은 알아차리기에서 시작된다. 요점은 ‘알아차려서 통찰한다’이다. 4염처는 들숨과 날숨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집중적으로 거듭함으로써 성취되고, 4염처를 거듭 수행함으로써 7각지(覺支)를 성취하게 된다.
붓다께서 말씀하셨다.<雜阿含經 제24권 제34경>
“아난아, 자기를 섬으로 삼아 자기에게 의지하고, 가르침을 섬으로 삼아 가르침에 의지하라. 다른 것을 섬으로 삼지 말고 다른 것에 의지하지 마라.”
아난이 붓다에게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이 자기를 섬으로 삼아 자기에게 의지하는 것입니까? 어떤 것이 가르침을 섬으로 삼아 가르침에 의지하는 것입니까? 어떤 것이 다른 것을 섬으로 삼지 않고 다른 것에 의지하지 않는 것입니까?”
“비구라면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염처에서 거듭 힘써 수행해서 바른 지혜와 바른 알아차림으로 세간의 탐욕과 근심을 다스려야 한다. 이와 같이 몸의 안팎을 관찰하고, 느낌 · 마음에서도 마찬가지로 하고, 현상에서 현상을 관찰하는 염처에서도 그와 같이 한다.
아난아, 이것이 자기를 섬으로 삼아 자기에게 의지하고, 가르침을 섬으로 삼아 가르침에 의지하고, 다른 것을 섬으로 삼지 않고 다른 것에 의지하지 않는 것이다.”
“비구들아, 만약 어떤 사람이 ‘사문 싯다르타는 우안거(雨安居) 동안 어떤 수행을 자주 하는가?’ 하고 물으면, 너희들은 ‘세존은 들숨과 날숨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자주 하면서 우안거를 보내셨다’고 말하라. 비구들아, 나는 바르게 관찰하면서 숨을 들이쉬고, 바르게 관찰하면서 숨을 내쉰다.”<상윳타 니카야 54 : 11, 一奢能加羅>
“비구들아, 들숨과 날숨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거듭거듭 하면 4염처를 성취하게 된다.
4염처를 거듭거듭 수행하면 7각지를 성취하게 된다.
7각지를 거듭거듭 수행하면 지혜와 해탈을 성취하게 된다.
비구들아, 들숨과 날숨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어떻게 거듭해야 큰 결실과 이익이 있는가?
비구들아, 어떤 비구는 숲이나 나무 아래나 빈방에서 가부좌하고 상체를 곧게 세우고 전면에 알아차리기를 확립한다. 그러고는 알아차리면서 숨을 들이쉬고 알아차리면서 숨을 내쉰다.”
<맛지마 니카야 118, 入出息念經>
2, 4정근(精勤)
어느 때 붓다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4정단이 있다.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하나는 단단(斷斷), 둘은 율의단(律儀斷), 셋은 수호단(隨護斷), 넷은 수단(修斷)이다.
어떤 것이 단단인가?
비구가 이미 생긴 악하고 불건전한 것들을 끊으려는 의욕을 가지고 부지런히 노력하는 데 마음을 쏟는 것이고, 아직 생기지 않은 악하고 불건전한 것들이 생기지 않도록 의욕을 가지고 부지런히 노력하는 데 마음을 쏟는 것이며, 아직 생기지 않은 건전한 것들이 생기도록 의욕을 가지고 부지런히 노력하는 데 마음을 쏟는 것이고, 이미 생긴 건전한 것들을 더욱더 닦고 익히려는 의욕을 가지고 부지런히 노력하는 데 마음을 쏟는 것이다.
어떤 것이 율의단인가?
비구가 눈을 잘 단속하고 은밀하게 항복시켜 바른 데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다. 귀 · 코 · 혀 · 몸 · 의식 기능도 그렇게 하는 것이다.
어떤 것이 수호단인가?
비구가 갖가지 진실한 삼매의 모습, 즉 청어상(靑瘀相) · 창상(脹相) · 농상(膿相) · 괴상(壞相) · 식부정상(食不淨相)을 닦고 지켜 사라지지 않게 하는 것이다.
어떤 것이 수단인가?
비구가 4염처를 닦는 것이다.”
그러고는 세존께서 게송을 읊으셨다.
단단과 율의단
수호단과 수단
이 4정단은
바른 깨달음을 얻은 이가 설하는 것이니
비구가 부지런히 노력하면
모든 번뇌를 소멸시킬 수 있으리.
<雜阿含經 제31권 제19경>
4정근(正勤)이라고도 하는 4정단(正斷)은 네 가지 바른 노력으로 나태함과 나쁜 행위를 끊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청어상은 시체의 피가 썩어 피부가 퍼렇게 되는 모습을 주시하는 수행이고, 창상은 시체가 띵띵하게 부푸는 모습을 주시하는 수행, 농상은 시체가 썩어 문드러져 고름이 나오는 모습을 주시하는 수행, 괴상은 시체가 뭉그러지는 모습을 주시하는 수행, 식부정상은 음식의 더러움을 주시하는 수행이다.
3, 4여의족(如意足)
4신족(四神足)이라고도 한다. ‘자유자재한 힘을 얻기 위한 네 가지 기반’이라는 뜻이다. 적극적인 의욕으로 선정을 닦아 자유자재한 힘을 성취하는 욕여의족(欲如意足), 정진으로 선정을 닦아 자유자재한 힘을 성취하는 정진여의족(精進如意足), 마음을 가다듬고 선정을 닦아 자유자재한 힘을 성취하는 심여의족(心如意足), 사유하고 관찰하는 선정을 닦아 자유자재한 힘을 성취하는 사유여의족(思惟如意足)을 말한다.
어느 때 붓다께서 구섬미국 구사라 동산에 계셨고, 아난도 거기에 있었다. 그때 어떤 바라문이 아난에게 와서 안부를 묻고 나서 한쪽에 앉아 여쭈었다. (……)<雜阿含經 제21권 제3경>
“바라문이여, 여래 · 응공 · 등정각께서는 알고 보신 대로 중생을 깨끗하게 하고 고뇌를 멸하며 근심과 슬픔을 끊게 하는 유일한 가르침인 4여의족을 설하셨습니다.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의욕으로 선정을 닦아 여의족을 성취하고, 정진으로 선정을 닦고, 마음으로 선정을 닦고, 사유로 선정을 닦아 여의족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댓글목록
지선행님의 댓글
지선행 작성일37 가지의 수행 수단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 법의 기본 바탕에는 마음이 생기고 머무르고 사라지는 마음작용에 집중하고 마음을 잘 관찰해서 알아채야 함을 알수있습니다. 사실 불교대학 공부와 선 공부를 병행하는 수행자로서 공부에 큰 진척이 없고 눈에띄는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선공부 보다 모르는 부분을 채우고 지식이 쌓여가는것이 눈에 보이는 불대 공부에 더 정성을 들인것이 내 현실이라 다시한번 반성해 봅니다. 이 핑계 저 핑계를 둘러대며 제일 중요한것을 놓치고 있는 나를 알아채고 보니 스님의 외로움에 나또한 보태고 있었음에 민망함을 피할길이 없습니다. 마음을 잘 살펴보고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마음의 작용을 통찰하기 위해 더 애쓰고 노력하리라 37조도법을 공부하며 다짐해 봅니다...
은서님의 댓글
은서 작성일제 몸과 마음만이라도 잘 관찰하고 다스리고 싶습니다, 선방에 갈 여건이 안되는 지금 집에서 조금이라도 명상을 해보고픈 마음입니다,
자현님의 댓글
자현 작성일알아차리기와 분별에 관해 확실히 이해가 됩니다.저의 모든것이 되도록 정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