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회의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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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흰구름 작성일17-07-05 05:11 조회31,190회 댓글8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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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특별한 의미의 하나는 윤회의 구조, 결국 ‘어찌하여 사람이 죽어서 다시 그 에너지가 어딘가에 덩어리로서 나타나버리는가?’ 라는 구조를 분명하게 밝혔다는 점이다.
이 에너지(생각 고정관념 집착의 덩어리)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輪廻(윤회),轉生(전생), 즉 이어져 전해져 버린다. 解脫(해탈)하지 못한다. 우리는 환각 속에 있다.
우리가 계속 환각 속에서 괴로워하고 있는 이유는 眼(안)耳(이)鼻(비)舌(설)身(신)에 접촉하는 色(색)聲(성)香(향)味(미)觸(촉)이라는 5가지의 물질적인 에너지에 대하여 격하게 欲(욕)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무엇을 보면, ‘또 보고 싶다.’라고, 들으면 ‘또 듣고 싶다.’고, 맛보면 ‘또 한번 맛보고 싶다.’라고 欲(욕)이 생겨난다. 欲이 생겨나는 것은 보고, 듣고, 맛본 것이 영구적으로 1회뿐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실은 두 번 다시 동일한 것이 보일 리가 없으며, 두 번 다시 동일한 것이 들릴 리가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또 보고 싶다. 또 듣고 싶다. 저 사람과 또 한 번 만나고 싶다.’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점점 새롭게 ‘계속 하고 싶다.’라는 에너지가 생겨난다. 그와 같이 해서 물질에 대한 欲이 생겨나는 것이다.
물질이라 하더라도 자신이 모르는 물질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기 때문에 욕欲이 생겨나지 않는다. 인간이 알고 있는 물질이라는 것은 色聲香味觸이라는 5종류, 그것 뿐이다. 거대하고 대단한 물질에 대한 것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알고 있는 것은 色聲香味觸의 5가지 에너지뿐이다. 그럼에도 머릿속에서 또 妄想(망상)하여 ‘우리는 온갖 것을 알고 있다.’라고 믿고 있다. 그것도 또한 착각인 것이다.
그러므로 누가 ‘나는 5根(근)과 관계없는 것도 알고 있다. 우주의 저쪽에 있는 新星(신성)을 발견하였다.’ 등으로 뽐내듯 말했다 하더라도, 그 말하고 있는 내용을 명확하게 분석해 보면, 결국 본 것, 들은 것을 더욱 얽어서 뒤죽박죽으로 어떻게 現象化(현상화)했을 뿐이다.
예를 들면, ‘우주의 끝에 있는 별이 보였다. 마침내 발견하였다.’라고 사진을 제시한다. 그 경우도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기계로 겨우 포착하게 된 약한 전파 등을 머리로 계산해서 어떻게든 눈으로 보이는 형태로, 사진과 같이 보이는 무언가를 만들어 냈을 뿐인 것이다. 그러므로 거기에 있는 정보는 결국 무언가 ‘보였다.’라는 정보뿐인 것이다.
댓글목록
지선행님의 댓글
지선행 작성일불법을 만나고 가르침을 받은 우리모두가 번뇌와 망상과 내가 경험하고 몸에 베인 고정관념의 지식에서 자유롭고 집착과 착각과 환각에서 깨어나 윤회의 사슬로부터 벗어나길 소망해 봅니다 ()
헛똑똑이님의 댓글
헛똑똑이 작성일하루하루가 욕구에 의해 시작 됩니다.또 그 욕구에 의해 힘든 삶을 버티기도 합니다. 부질없음을 알아도 메달려가는 이 못난 마음이 부끄럽습니다.
자현님의 댓글
자현 작성일삼보에 귀의합니다.지금의 제 모습에서 더 나은 저를 위해 정진하겠습니다.
Green님의 댓글
Green 작성일귀의삼보합니다. 집착이 아주 문제이네요. 일체는 오온으로 되어있는것을 관조하시고 모든 고액을 건너셨지요. 아제아제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보장화합장
김영채님의 댓글
김영채 작성일스님, 저는 한편으로 이렇게도 생각해봅니다. 사람마다 틀리겠지만 저에게는 우리가 두발을 딛고 다른 사람들과 같이 삶을 영위하고 있는 이 세상에서는 "하고싶어하는 것"과는 뗄래야 뗄수없는 관계인것으로 생각됩니다. 물론, 수행과 명상을 통해서 이로 인한 번뇌와 망상을 극복하고 소멸해야한다는 것은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짧은 인생인데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밝고, 긍정적이며 선한 욕망을 가지고 이에 따르는 어느 정도의 번뇌와 괴로움을 감수하고 인정하겠다는 생활은 불교적으로 어떻게 해석될수 있을까요?
흰구름님의 댓글
흰구름영채 법우님, 욕망과 욕구로 이루어진 삼계를 포기하고 싶어하지 않는 항하의 모래수보다 훨 많은 우리네 중생의 세간에 맞추어, 그런 선한(?) 법으로 세상과 사회를 안전하고 질서 있게 유지하려는 방법이 바로 양심, 도덕, 윤리의 법이지요...?! 영채님의 생각처럼 살고 싶어하는 많은 선한 사람들이 생활불교라는 이름으로 그런 실천 운동을 하더군요. 문제는 그 적정선이 사람마다 다르고 또 변한다는데 있다고 봅니다. 강의 시간에 그 적정선과 욕망의 성질과 계율에 대하여 자세히 논해 보고 사유할까요^^?
sweetcandy님의 댓글
sweetcandy 작성일탐진치 삼독에 빠져있지 않은날이 있을까요? 그다지 먹는 욕심이 많다고는 생각되어지지 않는데 조금 덜럭지못하고 더먹어 뱃살이 늘어가 생애처음으로 다이어트를 해야하고, 참는것이 다 좋는것은 아닌것같아 서로이야기 하다보면 또다른 나의 모자름과 어리석음은 나의 모습을 보게된다.
은서님의 댓글
은서 작성일끊임없이 갈망하는 제 마음이 이 욕구에서 벗어날 수는 있을까요? 이 또한 제 욕심인가요? 어제 오늘 스님의 말씀을 많이 되새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