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대학의 향연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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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나그네 작성일16-10-20 22:24 조회25,079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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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루고 미루다가 이제사야 숙제를 시작합니다. 게으르지 말자고 다짐하면서도 이리 게으르니 다음 생에는 소로 태어나지 않을까 싶네요.
대승불교에서 보살의 실천행으로 가장 중요시하는 것이 육바라밀입니다. 대승불교에서 수행법으로 팔정도가 아닌 육바라밀을 채택한 것은 팔정도가 자기완성을 위한 항목만을 포함하고 있고, 이타(利他)를 위해서는 충분치 않기 때문인데 육바라밀은 보시와 인욕 같은 대사회적인 항목을 포함하고 있어서 보살의 수행법으로 알맞기 때문입니다.
보시는 재시(財施)와 법시(法施), 무외시(無畏施)의 세 종류가 있는데 재시는 자비심으로 다른 이에게 조건 없이 물건을 주는 것이고, 법시는 다른 사람에게 부처의 법을 알려 주어서 선근(善根)을 자라게 하는 것이며, 무외시는 스스로 계를 지켜 남을 침해하지 않고 다른 이의 두려워하는 마음을 없애 주는 것입니다. 또한 정다운 웃음이나 따뜻한 말 한마디도 다 보시라고 합니다. 제가 살면서 쉽게 실천할 수 있는 보시인 것 같습니다.
지계는 부처님께서 비도덕적인 행위를 막기 위하여 설정해 놓은 법규를 지키고 범하지 않는것 부터 시작하여, 가지가지 선을 실천하는 모든 행위를 말합니다.
인욕은 온갖 모욕과 번뇌를 참고 어려움을 극복하여 안주하는 것으로, 우리 일상생활에 있어서 가장 견디기 어려운 성나고 언짢은 마음을 참고 견디는 것입니다. 이 인욕에는 네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복인(伏忍)으로, 비위에 거슬리는 일이 생기면 먼저 성나는 그 마음을 조복(調伏)하여 억누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역경만 참아서는 안 되며, 자기 마음을 즐겁게 하는 순경(順境)도 참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역경을 참지 못하면 분노가 치밀어서 투쟁하기 쉽고, 순경을 참지 못하면 유혹에 빠져서 몸과 마음을 버리기 쉽기 때문입니다.
둘째 유순인(柔順忍)으로, 사람이 참기를 많이 하면 저절로 조복이 되어서 역경이나 순경을 만날지라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경지에 이르게 됩니다.
셋째 무생인(無生忍)으로, 참고 견디어 보살의 지위에 오른 사람의 인욕행입니다. 인생이 무상하며 세상이 허황함을 깨닫고 일체만법(一切萬法)이 인연으로 모였다가 인연으로 흩어지는 진리를 깨닫고 보면 별로 성낼 것도 없고 참을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넷째 적멸인(寂滅忍)으로, 이것은 부처의 지위에 있어서의 인욕행입니다. 생사고해에 뛰어나서 본래부터 적멸한 열반의 경지에 서서 볼 때 한 물건도 없는 경계를 의미합니다. 이것은 인욕행을 닦음이 아니라, 본래부터 한 생각도 일으킴이 없는 곳에 참된 인욕이 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정진은 순일하고 물들지 않는 마음으로 항상 부지런히 닦아 꾸준히 나아가는 것입니다. 정(精)은 순일무잡(純一無雜)을 의미하고 진(進)은 용맹무퇴를 말합니다. 이 정진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몸과 입으로써 부지런히 착한 일을 닦고 배우며 실행하는 것이고, 둘째는 뜻을 항상 진리에 머무르게 하여 모든 생각이 착한 진리를 떠나지 않게정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밖에도 사정진(事精進)과 이정진(理精進)이 있는데, 사정진은 세간사와 출세간사를 막론하고 그것을 한번 이루려고 결심하였으면 그 목적이 성취될 때까지 부지런히 정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정진은 악한 생각을 없애고 선한 마음을 일으켜서 여러 사람이 이롭고 나에게도 좋은 일이거든 몸과 마음을 아끼지 않고 기어이 성취하도록 노력, 정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선정은 수행인이 반야의 지혜를 얻고 성불하기 위하여 마음을 닦는것것이며, 생각을 쉬는 것을 의미합니다. 현실생활이 불만과 고통으로 가득차게 되는 까닭은 잡다한 생각을 쉬지 못하고 어리석게 집착하고있 기 때문입니다.. 선정은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공부로서 망념과 사념과 허영심과 분별심을 버리게 합니다..
반야는 지혜라고 번역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지혜 보다 더 넓고 큰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모든 사물이나 이치를 밝게 꿰뚫어보는 깊은 슬기로서, 지식과 다른 점은 지식이 분별지(分別智)인 데 반하여 지혜는 무분별지입니다. 보살이 피안에 이르기 위하여 수행하는 육바라밀 중 마지막의 반야바라밀은 모든 부처의 어머니라 하며, 다른 5바라밀을 형성하는 바탕이 됩니다. 반야는 세 가지로 나누어 말하고 있습니다.
① 문자반야(文字般若)는 부처님이 설한 경(經)?율(律)?논(論) 모두를 가리키는 것이고, ② 관조반야(觀照般若)는 경?율?논의 문자반야를 통하여 진리를 알아내고 진리에 의하여 수행하는 것이며, ③ 실상반야(實相般若)는 부처가 체득한 진리 그 자체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상은 네이버 지식백과의 육바라밀을 참고한 내용이며, 제가 이해하고 제 공부의 기준으로 삼기에 알맞다고 생각되어서 숙제로 제출합니다.
육바라밀은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이를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것 만이 공부를 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지금 제가 한 숙제 내용을 프린트 해서 사무실 책상앞과 집안의 제가 기도하는 책상 앞에 붙여 놓고 늘 제 자신을 일깨워 가면서 실천하며 살고자 합니다.
그것이 제 안의 오탁악세를 계도하고 세상의 악을 조금이라도 없애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
심산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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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바라밀은 보시,지계,인욕,정진,선정,반야로 보살이 생사의 고해를 건너 열반에 이르기위해 실천해야할 여섯가지 덕목입니다.육바라밀에서 반야바라밀은 다른 바라밀을 행할때 바탕이 되어야 할것같습니다. 제행무상 제법무아라는 공의 도리가 그것입니다.또한 남을 이롭게 하는것이 고에서 벗어나는 길이란 법에 대한 믿음이 반야라 생각합니다. 예를들어 보시를 행할때, 중생은 베품의 댓가를 바라게됩니다. 만약 내가 베푼것에 대한 댓가가 돌아오지 않으면 괴롭게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조건없는 베품을 베풀어야 합니다. 처음시작은 보시라는 선행으로 시작하지만, 무주상보시라는 보시바라밀로 행할때 비로소 고를 여의고 깨달음에 이르는 행이 될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설하신 모든 법은 괴로움을 여의고 깨달음에 이르는 길을 보여주신것입니다. 육바라밀도 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르게하는 실천 덕목으로서 오탁악세를 잘 건너게하기위한 부처님의 자비인것 같습니다.
자현 합장
대승불교에서 보살의 실천행으로 가장 중요시하는 것이 육바라밀입니다. 대승불교에서 수행법으로 팔정도가 아닌 육바라밀을 채택한 것은 팔정도가 자기완성을 위한 항목만을 포함하고 있고, 이타(利他)를 위해서는 충분치 않기 때문인데 육바라밀은 보시와 인욕 같은 대사회적인 항목을 포함하고 있어서 보살의 수행법으로 알맞기 때문입니다.
보시는 재시(財施)와 법시(法施), 무외시(無畏施)의 세 종류가 있는데 재시는 자비심으로 다른 이에게 조건 없이 물건을 주는 것이고, 법시는 다른 사람에게 부처의 법을 알려 주어서 선근(善根)을 자라게 하는 것이며, 무외시는 스스로 계를 지켜 남을 침해하지 않고 다른 이의 두려워하는 마음을 없애 주는 것입니다. 또한 정다운 웃음이나 따뜻한 말 한마디도 다 보시라고 합니다. 제가 살면서 쉽게 실천할 수 있는 보시인 것 같습니다.
지계는 부처님께서 비도덕적인 행위를 막기 위하여 설정해 놓은 법규를 지키고 범하지 않는것 부터 시작하여, 가지가지 선을 실천하는 모든 행위를 말합니다.
인욕은 온갖 모욕과 번뇌를 참고 어려움을 극복하여 안주하는 것으로, 우리 일상생활에 있어서 가장 견디기 어려운 성나고 언짢은 마음을 참고 견디는 것입니다. 이 인욕에는 네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복인(伏忍)으로, 비위에 거슬리는 일이 생기면 먼저 성나는 그 마음을 조복(調伏)하여 억누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역경만 참아서는 안 되며, 자기 마음을 즐겁게 하는 순경(順境)도 참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역경을 참지 못하면 분노가 치밀어서 투쟁하기 쉽고, 순경을 참지 못하면 유혹에 빠져서 몸과 마음을 버리기 쉽기 때문입니다.
둘째 유순인(柔順忍)으로, 사람이 참기를 많이 하면 저절로 조복이 되어서 역경이나 순경을 만날지라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경지에 이르게 됩니다.
셋째 무생인(無生忍)으로, 참고 견디어 보살의 지위에 오른 사람의 인욕행입니다. 인생이 무상하며 세상이 허황함을 깨닫고 일체만법(一切萬法)이 인연으로 모였다가 인연으로 흩어지는 진리를 깨닫고 보면 별로 성낼 것도 없고 참을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넷째 적멸인(寂滅忍)으로, 이것은 부처의 지위에 있어서의 인욕행입니다. 생사고해에 뛰어나서 본래부터 적멸한 열반의 경지에 서서 볼 때 한 물건도 없는 경계를 의미합니다. 이것은 인욕행을 닦음이 아니라, 본래부터 한 생각도 일으킴이 없는 곳에 참된 인욕이 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정진은 순일하고 물들지 않는 마음으로 항상 부지런히 닦아 꾸준히 나아가는 것입니다. 정(精)은 순일무잡(純一無雜)을 의미하고 진(進)은 용맹무퇴를 말합니다. 이 정진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몸과 입으로써 부지런히 착한 일을 닦고 배우며 실행하는 것이고, 둘째는 뜻을 항상 진리에 머무르게 하여 모든 생각이 착한 진리를 떠나지 않게정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밖에도 사정진(事精進)과 이정진(理精進)이 있는데, 사정진은 세간사와 출세간사를 막론하고 그것을 한번 이루려고 결심하였으면 그 목적이 성취될 때까지 부지런히 정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정진은 악한 생각을 없애고 선한 마음을 일으켜서 여러 사람이 이롭고 나에게도 좋은 일이거든 몸과 마음을 아끼지 않고 기어이 성취하도록 노력, 정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선정은 수행인이 반야의 지혜를 얻고 성불하기 위하여 마음을 닦는것것이며, 생각을 쉬는 것을 의미합니다. 현실생활이 불만과 고통으로 가득차게 되는 까닭은 잡다한 생각을 쉬지 못하고 어리석게 집착하고있 기 때문입니다.. 선정은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공부로서 망념과 사념과 허영심과 분별심을 버리게 합니다..
반야는 지혜라고 번역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지혜 보다 더 넓고 큰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모든 사물이나 이치를 밝게 꿰뚫어보는 깊은 슬기로서, 지식과 다른 점은 지식이 분별지(分別智)인 데 반하여 지혜는 무분별지입니다. 보살이 피안에 이르기 위하여 수행하는 육바라밀 중 마지막의 반야바라밀은 모든 부처의 어머니라 하며, 다른 5바라밀을 형성하는 바탕이 됩니다. 반야는 세 가지로 나누어 말하고 있습니다.
① 문자반야(文字般若)는 부처님이 설한 경(經)?율(律)?논(論) 모두를 가리키는 것이고, ② 관조반야(觀照般若)는 경?율?논의 문자반야를 통하여 진리를 알아내고 진리에 의하여 수행하는 것이며, ③ 실상반야(實相般若)는 부처가 체득한 진리 그 자체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상은 네이버 지식백과의 육바라밀을 참고한 내용이며, 제가 이해하고 제 공부의 기준으로 삼기에 알맞다고 생각되어서 숙제로 제출합니다.
육바라밀은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이를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것 만이 공부를 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지금 제가 한 숙제 내용을 프린트 해서 사무실 책상앞과 집안의 제가 기도하는 책상 앞에 붙여 놓고 늘 제 자신을 일깨워 가면서 실천하며 살고자 합니다.
그것이 제 안의 오탁악세를 계도하고 세상의 악을 조금이라도 없애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
심산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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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바라밀은 보시,지계,인욕,정진,선정,반야로 보살이 생사의 고해를 건너 열반에 이르기위해 실천해야할 여섯가지 덕목입니다.육바라밀에서 반야바라밀은 다른 바라밀을 행할때 바탕이 되어야 할것같습니다. 제행무상 제법무아라는 공의 도리가 그것입니다.또한 남을 이롭게 하는것이 고에서 벗어나는 길이란 법에 대한 믿음이 반야라 생각합니다. 예를들어 보시를 행할때, 중생은 베품의 댓가를 바라게됩니다. 만약 내가 베푼것에 대한 댓가가 돌아오지 않으면 괴롭게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조건없는 베품을 베풀어야 합니다. 처음시작은 보시라는 선행으로 시작하지만, 무주상보시라는 보시바라밀로 행할때 비로소 고를 여의고 깨달음에 이르는 행이 될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설하신 모든 법은 괴로움을 여의고 깨달음에 이르는 길을 보여주신것입니다. 육바라밀도 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르게하는 실천 덕목으로서 오탁악세를 잘 건너게하기위한 부처님의 자비인것 같습니다.
자현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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