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대학의 향연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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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나그네 작성일16-10-01 21:43 조회23,77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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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
《잡아함》34권(T2-242b22)에서는 겁의 길이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비유컨대, 사방이 1유순(由旬, 약15km)이고 높이도 그러한 쇠로된 성(城)에 겨자씨를 가득 채워놓고, 어떤 사람이 백년에 한 알씩 집어내 그 겨자씨가 남김 없더라도 겁(劫)은 끝나지 않는다”고 한다. 겁은 유정(有情)의 시작이 없는 윤회(輪廻)를 말하며, 무명(無明)이 지속되는 기간을 말한다는 것이다.
12연기와 사성제
연기(緣起)의 법칙은 "이것이 있으면 그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면 그것도 없다"라고 서술된다. 이 서술에서 "이것"과 "그것"의 두 항목은 서로 연기관계(緣起關係), 즉 인과관계(因果關係)에 있다고 말한다.[1] 즉, "그것"은 "이것"을 의존하여(조건으로하여) 일어나는 관계에 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사제설(四諦說)인고집멸도(苦集滅道)는 집과 고라는 연기하는 항목과 도와 멸이라는 연기하는 항목을 합하여 병렬한 것이다. 여기에서 집은 고의 원인 또는 인연이 되며,도는 멸의 원인 또는 인연이 된다. 고집멸도는 고통의 원인이 집착 또는 갈애이며 고통을 소멸시키는 원인 또는 수단이 도라는 연기관계를 밝힌 것이다. 연기(緣起)하는 항목들로는 이들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서 대표적인 열 두 항목을 사용하여 설명된 연기설이 12연기설이다.[1]
불교의 초기 경전에는 이 십이연기설을 석가모니께서 이룬 깨달음(bodhi)의 내용으로 삼고 있을 정도이다. "연기의 법은 내가 지은 것도 아니요, 다른 사람이 지은 것도 아니다. 여래가 세상에 나오건 안 나오건 간에 이 법은 상주(常住)요, 법주(法住)요, 법계(法界)이니라. 여래는 다만 이 법을 자각하여 바른 깨달음을 이루어 중생들에게 설하나니, 이것이 있음으로써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함으로써 저것이 생한다. 즉 무명을 연하여 행이 있고, 내지 하나의 커다란 고온의 집(集)이 있게 된다. 이것이 없음으로써 저것이 없고, 이것이 멸함으로써 저것이 멸한다. 즉 무명이 멸하므로 행이 멸하고 내지 하나의 커다란 고온의 멸이 있게 된다."<잡아함 권 12> 석가모니뿐만 아니라 비바시 불(Vipasyin)을 비롯하여 과거에 출현하셨던 여러 부처님들도 모두가 보리수 아래서 십이연기를 역, 순으로 관찰해서 깨달음을 이루셨다고 설해져 있다.<잡아함 권 15>
십이연기설의 내용 제법의 실상에 대한 알음을 불교에서는 지혜(prajna, 般若)라고 부른다. 일체의 구조(십이처,사대,오온)와 속성(삼법인), 인과, 인연, 상의상관, 법칙성 등이 제법 실상의 내용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특히 법칙성에 대한 알음을 불교에서는 '명(明,vidya)'이라는 말로 부른다. 'vid'는 실제로 존재한다 또는 발견한다는 뜻을 가진 동사로서, 'vidya'는 실재하는 것, 발견된 것이라는 뜻을 나타낸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그것을 '명' 즉 '밝힘'이라고 번역한 것이다. 이러한 명의 유무는 인간의 존재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 놓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무상한 존재 속에 상주하는 법칙성을 발견한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존재 방식이 동일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들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게 될까? 이 물음에 대한 불교의 해답을 우리는 십이연기설에서 자세히 살펴볼 수가 있다.
명과 모순되는 개념을 '무명(無明, avidya)'이라고 부르는데 이런 무명이 사람에게 있게 되면 이것을 연(緣)하여 행(行)이 있게 되고, 행을 연하여 식(識)이 있게 되고, 식을 연하여 명색(名色)이 있게 되고, 명색을 연하여 육처(六處)가 있게 되고, 육처를 연하여 촉(觸)이 있게 되고, 촉을 연하여 수(受)가 있게 되고, 수를 연하여 애(愛)가 있게 되고, 애를 연하여 취(取)가 있게 되고, 취를 연하여 유(有)가 있게 되고, 유를 연하여 생(生)이 있게 되고, 생을 연하여 노(老), 사(死), 우(憂), 비(悲), 뇌(惱), 고(苦)가 있게 된다. 그리하여 커다란 하나의 괴로운 온(蘊)의 집(集, 發生)이 있게 된다는 것이다.<잡아함 권15> 한 마디로 요약하면 명(明)이 없는 사람에게는 죽음의 괴로움이 있게 된다는 뜻이다. 그리하여 죽음이 있게 되는 형성과정을 열두 단계로 자세하게 분석해서 보여 주고 있다. 내 무명으로 인해 그 진리의 무명으로 인해 겁의 시간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허우적대면서도 업의 보로 인한 윤회에 있음을 그조차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내가 보였습니다.법의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공부햐야겠지요? ()
정혜안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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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거룩한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거룩한 스님들께 귀의합니다.
어제 공부한 십이연기는 블교의 가장 기본적인 세계관인 것 같습니다.
십이처의 구성이 눈, 귀,코, 혀,몸,의지라는 여섯개의 인식 기관과 색,소리,냄새,맛, 촉감,법이라는 여섯개의 인식 대상으로 되어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십이연기는 인간의 인식을 중심으로 무명.행.식 명색.육입.촉.수.애.취.유.생.노사..
진행되는 과정은 생각. 감정.오감으로 함축 되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이런 생각 감정 오감을 가지고 어떻게 사람들과 소통하며 살아야 할까요?
거칠은 욕망의 세계에서 살지라도 눈 밝으신 선지식인 스님께 묻고 대답하며 보살도를 행하면서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게으름 피지않고 열심히 정진할 수 밖에요.^^
여여성 합장.
《잡아함》34권(T2-242b22)에서는 겁의 길이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비유컨대, 사방이 1유순(由旬, 약15km)이고 높이도 그러한 쇠로된 성(城)에 겨자씨를 가득 채워놓고, 어떤 사람이 백년에 한 알씩 집어내 그 겨자씨가 남김 없더라도 겁(劫)은 끝나지 않는다”고 한다. 겁은 유정(有情)의 시작이 없는 윤회(輪廻)를 말하며, 무명(無明)이 지속되는 기간을 말한다는 것이다.
12연기와 사성제
연기(緣起)의 법칙은 "이것이 있으면 그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면 그것도 없다"라고 서술된다. 이 서술에서 "이것"과 "그것"의 두 항목은 서로 연기관계(緣起關係), 즉 인과관계(因果關係)에 있다고 말한다.[1] 즉, "그것"은 "이것"을 의존하여(조건으로하여) 일어나는 관계에 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사제설(四諦說)인고집멸도(苦集滅道)는 집과 고라는 연기하는 항목과 도와 멸이라는 연기하는 항목을 합하여 병렬한 것이다. 여기에서 집은 고의 원인 또는 인연이 되며,도는 멸의 원인 또는 인연이 된다. 고집멸도는 고통의 원인이 집착 또는 갈애이며 고통을 소멸시키는 원인 또는 수단이 도라는 연기관계를 밝힌 것이다. 연기(緣起)하는 항목들로는 이들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서 대표적인 열 두 항목을 사용하여 설명된 연기설이 12연기설이다.[1]
불교의 초기 경전에는 이 십이연기설을 석가모니께서 이룬 깨달음(bodhi)의 내용으로 삼고 있을 정도이다. "연기의 법은 내가 지은 것도 아니요, 다른 사람이 지은 것도 아니다. 여래가 세상에 나오건 안 나오건 간에 이 법은 상주(常住)요, 법주(法住)요, 법계(法界)이니라. 여래는 다만 이 법을 자각하여 바른 깨달음을 이루어 중생들에게 설하나니, 이것이 있음으로써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함으로써 저것이 생한다. 즉 무명을 연하여 행이 있고, 내지 하나의 커다란 고온의 집(集)이 있게 된다. 이것이 없음으로써 저것이 없고, 이것이 멸함으로써 저것이 멸한다. 즉 무명이 멸하므로 행이 멸하고 내지 하나의 커다란 고온의 멸이 있게 된다."<잡아함 권 12> 석가모니뿐만 아니라 비바시 불(Vipasyin)을 비롯하여 과거에 출현하셨던 여러 부처님들도 모두가 보리수 아래서 십이연기를 역, 순으로 관찰해서 깨달음을 이루셨다고 설해져 있다.<잡아함 권 15>
십이연기설의 내용 제법의 실상에 대한 알음을 불교에서는 지혜(prajna, 般若)라고 부른다. 일체의 구조(십이처,사대,오온)와 속성(삼법인), 인과, 인연, 상의상관, 법칙성 등이 제법 실상의 내용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특히 법칙성에 대한 알음을 불교에서는 '명(明,vidya)'이라는 말로 부른다. 'vid'는 실제로 존재한다 또는 발견한다는 뜻을 가진 동사로서, 'vidya'는 실재하는 것, 발견된 것이라는 뜻을 나타낸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그것을 '명' 즉 '밝힘'이라고 번역한 것이다. 이러한 명의 유무는 인간의 존재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 놓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무상한 존재 속에 상주하는 법칙성을 발견한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존재 방식이 동일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들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게 될까? 이 물음에 대한 불교의 해답을 우리는 십이연기설에서 자세히 살펴볼 수가 있다.
명과 모순되는 개념을 '무명(無明, avidya)'이라고 부르는데 이런 무명이 사람에게 있게 되면 이것을 연(緣)하여 행(行)이 있게 되고, 행을 연하여 식(識)이 있게 되고, 식을 연하여 명색(名色)이 있게 되고, 명색을 연하여 육처(六處)가 있게 되고, 육처를 연하여 촉(觸)이 있게 되고, 촉을 연하여 수(受)가 있게 되고, 수를 연하여 애(愛)가 있게 되고, 애를 연하여 취(取)가 있게 되고, 취를 연하여 유(有)가 있게 되고, 유를 연하여 생(生)이 있게 되고, 생을 연하여 노(老), 사(死), 우(憂), 비(悲), 뇌(惱), 고(苦)가 있게 된다. 그리하여 커다란 하나의 괴로운 온(蘊)의 집(集, 發生)이 있게 된다는 것이다.<잡아함 권15> 한 마디로 요약하면 명(明)이 없는 사람에게는 죽음의 괴로움이 있게 된다는 뜻이다. 그리하여 죽음이 있게 되는 형성과정을 열두 단계로 자세하게 분석해서 보여 주고 있다. 내 무명으로 인해 그 진리의 무명으로 인해 겁의 시간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허우적대면서도 업의 보로 인한 윤회에 있음을 그조차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내가 보였습니다.법의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공부햐야겠지요? ()
정혜안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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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거룩한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거룩한 스님들께 귀의합니다.
어제 공부한 십이연기는 블교의 가장 기본적인 세계관인 것 같습니다.
십이처의 구성이 눈, 귀,코, 혀,몸,의지라는 여섯개의 인식 기관과 색,소리,냄새,맛, 촉감,법이라는 여섯개의 인식 대상으로 되어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십이연기는 인간의 인식을 중심으로 무명.행.식 명색.육입.촉.수.애.취.유.생.노사..
진행되는 과정은 생각. 감정.오감으로 함축 되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이런 생각 감정 오감을 가지고 어떻게 사람들과 소통하며 살아야 할까요?
거칠은 욕망의 세계에서 살지라도 눈 밝으신 선지식인 스님께 묻고 대답하며 보살도를 행하면서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게으름 피지않고 열심히 정진할 수 밖에요.^^
여여성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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