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대학의 향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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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나그네 작성일16-09-20 23:50 조회23,52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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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는 2분이 작성하신 견해에 대해 올려 드립니다.
말씀드리지만 글을 올려 주시는 모든 도반들은 불교의 정법을 처음 공부하시는 분도 있을 것이고 오랫동안접하신 도반들도 있음을 알려 드리며 행여 도반들의 주제에 대한 잘못된 견해도 있을 수 있다고 판단하는
바 이를 통하여 탁마를 해가며 올바른 정법에 도달할 수 있도록 가르침을 주시기 바랍니다.
주제 : 색계,무색계,12연기,사성제
나이를 떠나 많은 배움의 선배들이 이미 공부한 글들을 올렸으리라 생각하며 다른 인연법에 모두 대비 시켜도 모두에 속한 저이지만 ,특히 집착에 대한 괴로움에 화두를 꽂아 거기서 인과된 지금의 나와의 관계를
풀어 볼까합니다.
그 전에 ,저는 지금 법화경을 공부하며 큰 혼란을 겪고 있는 중입니다.
법을 만난지 이제 겨우 일년이라 그런 걸까요, 큰깨달음을 얻기 까지, 죽을 때까지 이렇게 이렇게 현실 속의
나와 싸워야한다고 생각하니 한편으론 두렵고 어렵습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그냥 믿음의 문제 일것 같지만 수행의 당사자가 제자신이기에 행위일치를 하기엔 죽을 때까지 닦아도 모자를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저를 들었다 놨다를 반복하는 법화경 강의를 들으며 두번의 강의에도 저를 아예 껍질째 부수어서 도통 이젠
내가 누구인지 조차 혼동이 됩니다.
그 동안 제가 살아 온 모습에서 악보다 그나마 선을 우선으로 행하고 선택했던건 부모님 가르침과 영향때문이였고 철들어 학습된 도덕과 윤리의 결과물이지 제가 아닌것 같아서, 만약 자라온 환경이 바뀌였다면 과연 제가 지금의 모습으로 남았을까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사성제를 공부하면서 연결고리로 제 삶을 풀어 가다보니 제 괴로움이 어떤 관념,사고에 의한 집착이 제일 크다라는 걸 느꼈고 그리고 사람에 대한 집착이 심하다라는걸 깨달았습니다.
공부하기 이전부터 번민이 있었기에 집착에 대해 알고는 있었지만 그걸 풀고 나오는 방법를 몰랐었습니다.
이제 제대로 된 부처님법을 만나 이 번민에서 해방되기를 희망합니다.
짧은 기간에 부처님법을 만나 제 육신과 사고가 법을 만나기 이전의 틀을 깨고 나오기가 이렇게도 어렵다는걸 깨닫지만 지금의 깨달음마저도 끝이 아닌거란 걸... ,
그리고 현실 속은 한없이 작은 나지만 미래에 무한대로 발전 해나가는 나라는 또다른 가능성이 있기에 하나의 깨달음에 머물지않고 깨달음의 정진에 힘쓸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이 정도로는 벌금을 내야 하겠죠,스님?)
무애안 합장.
사성제와 12연기법
불교의 기본교리의 근간을 이루는 사성제와 연기법을 공부하는데 일주일로는 제 생각을 정리하기는 사실
어려웠습니다. 특히 12연기의 각각의 뜻에만 집중하다 보니 더 진도가 더뎌서 좀더 내용을 크게 나눠서
생각해보았습니다.
인터넷에 나온 글을 읽어보면서 제일 빨리 이해가 되고 공감되었던 내용은연기법의 바탕위에서 인간의
생노병사 괴로움의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한 사성제에 대한 것이였습니다. 연기법은 한마디로 모든것은
인연에 따라 생기고 , 인연에 따라 소멸한다는것입니다.여기서 인연은 원인과 조건을 말하는데 즉 연기법은
모든 존재가 다른 존재를 의지하여 존재하고 소멸하는 것이라는 겁니다.
이 대우주적 근본 교리로 우리 인간 소우주에 응용이 사성제인겁니다.
첫째, 집성제가 있어 고성제가 있고 , 도성제가 있어 멸성제가 있다는 것
다시 말해서 애욕과 무명의 업(집성제)으로 현실세계에서는 8가지의 가지가지 괴로움(고성제)에 시달
리며 이러한 괴로움을 소멸로 이루는 8정도( 도성제)가 있어서 우리 중생의 고통은 소멸(멸성제)된다는
것입니다.
둘째로는, 윤회가 있어서 해탈이 있고 ,윤회가 없다면 해탈도 없다는 것 (존재의 발생과 소멸)
고성제와 집성제를 중생(고통/윤회)의 길로 묶고 멸성제와 고성제를 성인들의 길( 행복/ 해탈)로
묶어서 본다면 윤회와 해탈은 서로 안과 밖을 이루며 공존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원인과 결과의 법칙인 연기를 통해 고집멸도를 규명해 주셨고 세부적으로 12가지 연기법으로
중생이 겪게되는 고통과 윤회의 길을 보여주시고 다시 역 방향으로 돌려 그것이 없어지는 해탈의 과정
까지 알려주셨습니다.
저는 이 과정에서 해탈의 마지막이자 또한 고통의 시작인 무명에 대해 고찰해 보았습니다.
무명의 정의를 간단히 요약하면 부처님 말씀으로는 사성제와 연기를 모르는것이 무명이다라고 하셨고
대부분의 정의는 진리를 알지못하는 즉 지혜가 없어 진리에 대해 무지한 것이라 했습니다. 이 부분을
보면서 무명의 결과인 괴로움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넓게 생각하면 세상사 인간사의
괴로움까지 생각할 수 있겠지만 범위를 좁혀 저 자신의 괴로움과 그것의 실체를 알아보기로 했습니다.
사람들이 느끼는 괴로움의 차이는 가지각색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살아온 환경, 습관 ,가치관 등등
여러 구조적 요소에 따라 같은 고통이라도 느끼고 이해하는 방법은 다 다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크고 작은 괴로움들이 점철된 인생을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제 자신에게 물어보게 됐습니다. 나는
지금 괴로운가?... 이 질문에 갑자기 멍해지면서 곧바로 생각나는 괴로움이 없으니 적잖이 충격이
되었습니다. (너무 많은 괴로움이 있어서 답이 어려웠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어떻게 괴로움이 없을 수가 있겠습니까? 찬찬히 생각해보면 자식걱정 사는 걱정 등등 실로 말할 것
없는 근심 걱정 괴로움에 살아가는데 생활의 습에 젖어서 사는 것이 다 이런 것이려니 하면서 일상의
소소한 행복이나 즐거움으로 괴로움을 잊어버리는 등 고통 속에 살면서도 내가 사는 이 안에서는 제가
무명인지도 모르고 살았다는 것이 너무 충격이였습다.
사람은 다쳐도 큰 부상이 아니라면 자연 치유 능력이 있어서 치유가 될 수는 있지만 상처가 없어지긴
힘이 듭니다. 이와 같은 원리로 괴로움도 행복이라는 경험으로 잠시의 치유는 될 수는 있지만 상처가
남는 것처럼 무명의 괴로움은 저희의 삶을 윤회의 굴레바퀴에 머물게 하는 것이라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중생의 힘으로는우리 몸이나 마음에서 일어나는 고통을 긍정적인 발전의 변화로 잠시 치유할수 있을런지 모르지만 그 수없는 자신 안의 갈등과 괴로움을 일일이 다 통제도 불가하고 근본적 대응도
한계가 있기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생각합니다. 나는 어떻게 무명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것에 대한 답은 바로
도성제였습니다. 내가 부처님 법을 믿는 이유를 이 시간을 빌어 적어본다면...
지금 살아가는 이 순간 순간을 무명으로 인한 행, 애착 ,집착으로부터 해방되어 참된 나를 알고 내가
지어온 업으로 만들어진 나와 연결된 모든 생명체에 감사 할 줄 아는 지혜를 닦기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한번 반성합니다. 제 무명으로 인한 업을 깨닫지 못하고 저와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제 마음대로
안된다는 이유로 저와 인연된 사람들에게 상처주고 힘들게 하고 그로 인해 저도 힘들었던 시간들을 ..
다 연기의 법칙으로 원인이 있었기에 결과가 있는 너무나도 간단 명료한 이치를 몰랐던 무명에 다시 한번
참회합니다.
무명으로 살았던 시간을 다시 돌릴 수는 없기에 다시 제 마음을 가라앉혀 놓고 들여다 보겠습니다.
살면서 나만 억울하고 괴롭다고 생각했던 자괴감 내가 남보다 더 뛰어나길 바랬던 자만감 남들과 비교했던
시기감 세상 삼라만사가 다 제 각각이 인연으로 서로 의지하고 생성 소멸 되는것인데도 무명으로 인해 나혼자 가련다 하는 독불장군 같았던 이기심...
이것도 다 제 업의 모습이기에 부끄럽지만 인정하고 부처님 법인 팔정도를 항상 마음에 두고 사물을 바로
보고 알아차리고 결정하는늘 항상 마음을 수련하는 불자가 되기를 노력하겠습니다.
인생이 힘들다해도 삼악도의 괴로움에는 비교도 할바 아니라 믿습니다. 부처님을 믿고 신념을 두터히 쌓아
괴로움도 나의 수행의 길임을 잊지 않겠습니다.
운오도 합장
말씀드리지만 글을 올려 주시는 모든 도반들은 불교의 정법을 처음 공부하시는 분도 있을 것이고 오랫동안접하신 도반들도 있음을 알려 드리며 행여 도반들의 주제에 대한 잘못된 견해도 있을 수 있다고 판단하는
바 이를 통하여 탁마를 해가며 올바른 정법에 도달할 수 있도록 가르침을 주시기 바랍니다.
주제 : 색계,무색계,12연기,사성제
나이를 떠나 많은 배움의 선배들이 이미 공부한 글들을 올렸으리라 생각하며 다른 인연법에 모두 대비 시켜도 모두에 속한 저이지만 ,특히 집착에 대한 괴로움에 화두를 꽂아 거기서 인과된 지금의 나와의 관계를
풀어 볼까합니다.
그 전에 ,저는 지금 법화경을 공부하며 큰 혼란을 겪고 있는 중입니다.
법을 만난지 이제 겨우 일년이라 그런 걸까요, 큰깨달음을 얻기 까지, 죽을 때까지 이렇게 이렇게 현실 속의
나와 싸워야한다고 생각하니 한편으론 두렵고 어렵습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그냥 믿음의 문제 일것 같지만 수행의 당사자가 제자신이기에 행위일치를 하기엔 죽을 때까지 닦아도 모자를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저를 들었다 놨다를 반복하는 법화경 강의를 들으며 두번의 강의에도 저를 아예 껍질째 부수어서 도통 이젠
내가 누구인지 조차 혼동이 됩니다.
그 동안 제가 살아 온 모습에서 악보다 그나마 선을 우선으로 행하고 선택했던건 부모님 가르침과 영향때문이였고 철들어 학습된 도덕과 윤리의 결과물이지 제가 아닌것 같아서, 만약 자라온 환경이 바뀌였다면 과연 제가 지금의 모습으로 남았을까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사성제를 공부하면서 연결고리로 제 삶을 풀어 가다보니 제 괴로움이 어떤 관념,사고에 의한 집착이 제일 크다라는 걸 느꼈고 그리고 사람에 대한 집착이 심하다라는걸 깨달았습니다.
공부하기 이전부터 번민이 있었기에 집착에 대해 알고는 있었지만 그걸 풀고 나오는 방법를 몰랐었습니다.
이제 제대로 된 부처님법을 만나 이 번민에서 해방되기를 희망합니다.
짧은 기간에 부처님법을 만나 제 육신과 사고가 법을 만나기 이전의 틀을 깨고 나오기가 이렇게도 어렵다는걸 깨닫지만 지금의 깨달음마저도 끝이 아닌거란 걸... ,
그리고 현실 속은 한없이 작은 나지만 미래에 무한대로 발전 해나가는 나라는 또다른 가능성이 있기에 하나의 깨달음에 머물지않고 깨달음의 정진에 힘쓸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이 정도로는 벌금을 내야 하겠죠,스님?)
무애안 합장.
사성제와 12연기법
불교의 기본교리의 근간을 이루는 사성제와 연기법을 공부하는데 일주일로는 제 생각을 정리하기는 사실
어려웠습니다. 특히 12연기의 각각의 뜻에만 집중하다 보니 더 진도가 더뎌서 좀더 내용을 크게 나눠서
생각해보았습니다.
인터넷에 나온 글을 읽어보면서 제일 빨리 이해가 되고 공감되었던 내용은연기법의 바탕위에서 인간의
생노병사 괴로움의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한 사성제에 대한 것이였습니다. 연기법은 한마디로 모든것은
인연에 따라 생기고 , 인연에 따라 소멸한다는것입니다.여기서 인연은 원인과 조건을 말하는데 즉 연기법은
모든 존재가 다른 존재를 의지하여 존재하고 소멸하는 것이라는 겁니다.
이 대우주적 근본 교리로 우리 인간 소우주에 응용이 사성제인겁니다.
첫째, 집성제가 있어 고성제가 있고 , 도성제가 있어 멸성제가 있다는 것
다시 말해서 애욕과 무명의 업(집성제)으로 현실세계에서는 8가지의 가지가지 괴로움(고성제)에 시달
리며 이러한 괴로움을 소멸로 이루는 8정도( 도성제)가 있어서 우리 중생의 고통은 소멸(멸성제)된다는
것입니다.
둘째로는, 윤회가 있어서 해탈이 있고 ,윤회가 없다면 해탈도 없다는 것 (존재의 발생과 소멸)
고성제와 집성제를 중생(고통/윤회)의 길로 묶고 멸성제와 고성제를 성인들의 길( 행복/ 해탈)로
묶어서 본다면 윤회와 해탈은 서로 안과 밖을 이루며 공존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원인과 결과의 법칙인 연기를 통해 고집멸도를 규명해 주셨고 세부적으로 12가지 연기법으로
중생이 겪게되는 고통과 윤회의 길을 보여주시고 다시 역 방향으로 돌려 그것이 없어지는 해탈의 과정
까지 알려주셨습니다.
저는 이 과정에서 해탈의 마지막이자 또한 고통의 시작인 무명에 대해 고찰해 보았습니다.
무명의 정의를 간단히 요약하면 부처님 말씀으로는 사성제와 연기를 모르는것이 무명이다라고 하셨고
대부분의 정의는 진리를 알지못하는 즉 지혜가 없어 진리에 대해 무지한 것이라 했습니다. 이 부분을
보면서 무명의 결과인 괴로움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넓게 생각하면 세상사 인간사의
괴로움까지 생각할 수 있겠지만 범위를 좁혀 저 자신의 괴로움과 그것의 실체를 알아보기로 했습니다.
사람들이 느끼는 괴로움의 차이는 가지각색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살아온 환경, 습관 ,가치관 등등
여러 구조적 요소에 따라 같은 고통이라도 느끼고 이해하는 방법은 다 다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크고 작은 괴로움들이 점철된 인생을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제 자신에게 물어보게 됐습니다. 나는
지금 괴로운가?... 이 질문에 갑자기 멍해지면서 곧바로 생각나는 괴로움이 없으니 적잖이 충격이
되었습니다. (너무 많은 괴로움이 있어서 답이 어려웠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어떻게 괴로움이 없을 수가 있겠습니까? 찬찬히 생각해보면 자식걱정 사는 걱정 등등 실로 말할 것
없는 근심 걱정 괴로움에 살아가는데 생활의 습에 젖어서 사는 것이 다 이런 것이려니 하면서 일상의
소소한 행복이나 즐거움으로 괴로움을 잊어버리는 등 고통 속에 살면서도 내가 사는 이 안에서는 제가
무명인지도 모르고 살았다는 것이 너무 충격이였습다.
사람은 다쳐도 큰 부상이 아니라면 자연 치유 능력이 있어서 치유가 될 수는 있지만 상처가 없어지긴
힘이 듭니다. 이와 같은 원리로 괴로움도 행복이라는 경험으로 잠시의 치유는 될 수는 있지만 상처가
남는 것처럼 무명의 괴로움은 저희의 삶을 윤회의 굴레바퀴에 머물게 하는 것이라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중생의 힘으로는우리 몸이나 마음에서 일어나는 고통을 긍정적인 발전의 변화로 잠시 치유할수 있을런지 모르지만 그 수없는 자신 안의 갈등과 괴로움을 일일이 다 통제도 불가하고 근본적 대응도
한계가 있기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생각합니다. 나는 어떻게 무명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것에 대한 답은 바로
도성제였습니다. 내가 부처님 법을 믿는 이유를 이 시간을 빌어 적어본다면...
지금 살아가는 이 순간 순간을 무명으로 인한 행, 애착 ,집착으로부터 해방되어 참된 나를 알고 내가
지어온 업으로 만들어진 나와 연결된 모든 생명체에 감사 할 줄 아는 지혜를 닦기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한번 반성합니다. 제 무명으로 인한 업을 깨닫지 못하고 저와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제 마음대로
안된다는 이유로 저와 인연된 사람들에게 상처주고 힘들게 하고 그로 인해 저도 힘들었던 시간들을 ..
다 연기의 법칙으로 원인이 있었기에 결과가 있는 너무나도 간단 명료한 이치를 몰랐던 무명에 다시 한번
참회합니다.
무명으로 살았던 시간을 다시 돌릴 수는 없기에 다시 제 마음을 가라앉혀 놓고 들여다 보겠습니다.
살면서 나만 억울하고 괴롭다고 생각했던 자괴감 내가 남보다 더 뛰어나길 바랬던 자만감 남들과 비교했던
시기감 세상 삼라만사가 다 제 각각이 인연으로 서로 의지하고 생성 소멸 되는것인데도 무명으로 인해 나혼자 가련다 하는 독불장군 같았던 이기심...
이것도 다 제 업의 모습이기에 부끄럽지만 인정하고 부처님 법인 팔정도를 항상 마음에 두고 사물을 바로
보고 알아차리고 결정하는늘 항상 마음을 수련하는 불자가 되기를 노력하겠습니다.
인생이 힘들다해도 삼악도의 괴로움에는 비교도 할바 아니라 믿습니다. 부처님을 믿고 신념을 두터히 쌓아
괴로움도 나의 수행의 길임을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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