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대학의 향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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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나그네 작성일16-09-20 23:16 조회23,02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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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한 마음으로 삼보에 귀의하옵니다.
지난 불기 2560년 8월2일 오후 7시.
이시간쯤이면 저녁예불을 끝내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갈 시간인데 오늘은 좀 특이하다.
십수명의 도반들이 필기도구 등을 들고 누군가를 기다리며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아하!!.
오늘부터 시작되는 불교대학에서 대승불교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법화경"을 가지고 주지스님께서
강의를 시작하는 첫날이기 때문인 것이다.
그로부터 오늘로 6째주의 강의시간이 흘러 나이를 불문하고 정법을 믿고 배우고 실천하고 나아가서는 진정한 참나를 찾겠다는 도반들의 열망은 잠시도 한눈을 팔 수 없을 정도로 주지스님께서는 교와 선의 양면성을조목조목 접목시켜 열강을 해주시며 끊임없이 깨어있음을 강조하시고 그때마다 도반들이 생각하고 자신의생활과의 관계를 스스로 터득할 수 있도록 가르치심의 연속이었다.
하여 오늘부터 도반들의 스스럼없는 자기 반성과 주제에 대한 개인의 견해를 피력하며 끊임없이 서로의
의견을 나누고 서로를 격려하는 현장을 올려볼까 합니다.
(대승과 소승의 차이점에 대해서)
어제 8/16 강의에서 스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불교를 명확하게 정의하셨습니다.
1. 불교는 [지혜]를 완성하고 [자비]를 실천하는 종교이다.
2.여기서 (1)지혜를 깨닫는 수행과 (2)자비를 실행하는 수행, 이 두가지의 수행이 파생된다.
3.소승불교는 (1)자기 자신의 지혜를 깨닫는 데에 목적을 두는 반면, 대승불교는 이에 더 나아가서 (2)남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까지 포괄하기에 대승불교가 더 수승하다.
4.대승불교는 즉, [자리이타] =[일승: 법화경의 요지] = 육바라밀, 십바라밀의 실천이다.
5.바라밀을 실천하는 마음가짐은 한치의 걸림도 없어야햔다. "오로지 할 뿐..."
위 다섯가지는 스님께서 평소 일요법문이나 상담 때 언제나 일관되게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그런데도 지난주 소승불교와 대승불교의 차이를 알아오라는 숙제를 인터넷으로 뒤적거리며 그 내적 연관성을 전혀 꿰뚫어보지 못하고 소승불교는 '나 혼자만', 대승불교는 '남들과 함께 여러명이서' 라는 그 피상적인 언어에 집착하고 있었습니다.그동안 스님의 말씀을 귀로만 듣고 지혜의 눈으로는 보지 못한 것을 깨닫고 제 스스로에게 얼마나 지혜가 부족한지,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또 한차례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성월심 보살님의 지혜 증득과 자비 실천에 있어서의 밸런스라는 질문과 스님의 답은 제 중생심 극복을 위해 시작한 수행 (아니, 엄밀히 말하면 입문)은 지금 어디에 있으며, 자비 실천이라는 수행은 얼마나 올바른 마음가짐으로 하고 있는지 점검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스님께서 자비 실천에 있어서 보상을 바라거나 꾀가 많아 몸을 사리는 바람직하지 못한 예를 들으셨을때는 너무나 뜨끔하였고 또 한차례 나의 어리석음과 게으름을 보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께서는 운오도 보살의 숙제 리포트를 공유해주셨습니다. 숙제를 내주신 스님의 의도를 짚어내며 지혜의 눈으로 영화를 풀어나가는 그 진솔함과 예리한 통찰력에 탄복을 거듭했습니다.사실 눈물나게 부럽기도 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운오도 보살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훌륭한 강의를 설해주신 스님과 이 자리를 만들어주신 도반 거사님, 보살님들께 진심을 다하여 감사 드리며 이 후기를 마칩니다.
혜서원 합장
지난 불기 2560년 8월2일 오후 7시.
이시간쯤이면 저녁예불을 끝내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갈 시간인데 오늘은 좀 특이하다.
십수명의 도반들이 필기도구 등을 들고 누군가를 기다리며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아하!!.
오늘부터 시작되는 불교대학에서 대승불교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법화경"을 가지고 주지스님께서
강의를 시작하는 첫날이기 때문인 것이다.
그로부터 오늘로 6째주의 강의시간이 흘러 나이를 불문하고 정법을 믿고 배우고 실천하고 나아가서는 진정한 참나를 찾겠다는 도반들의 열망은 잠시도 한눈을 팔 수 없을 정도로 주지스님께서는 교와 선의 양면성을조목조목 접목시켜 열강을 해주시며 끊임없이 깨어있음을 강조하시고 그때마다 도반들이 생각하고 자신의생활과의 관계를 스스로 터득할 수 있도록 가르치심의 연속이었다.
하여 오늘부터 도반들의 스스럼없는 자기 반성과 주제에 대한 개인의 견해를 피력하며 끊임없이 서로의
의견을 나누고 서로를 격려하는 현장을 올려볼까 합니다.
(대승과 소승의 차이점에 대해서)
어제 8/16 강의에서 스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불교를 명확하게 정의하셨습니다.
1. 불교는 [지혜]를 완성하고 [자비]를 실천하는 종교이다.
2.여기서 (1)지혜를 깨닫는 수행과 (2)자비를 실행하는 수행, 이 두가지의 수행이 파생된다.
3.소승불교는 (1)자기 자신의 지혜를 깨닫는 데에 목적을 두는 반면, 대승불교는 이에 더 나아가서 (2)남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까지 포괄하기에 대승불교가 더 수승하다.
4.대승불교는 즉, [자리이타] =[일승: 법화경의 요지] = 육바라밀, 십바라밀의 실천이다.
5.바라밀을 실천하는 마음가짐은 한치의 걸림도 없어야햔다. "오로지 할 뿐..."
위 다섯가지는 스님께서 평소 일요법문이나 상담 때 언제나 일관되게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그런데도 지난주 소승불교와 대승불교의 차이를 알아오라는 숙제를 인터넷으로 뒤적거리며 그 내적 연관성을 전혀 꿰뚫어보지 못하고 소승불교는 '나 혼자만', 대승불교는 '남들과 함께 여러명이서' 라는 그 피상적인 언어에 집착하고 있었습니다.그동안 스님의 말씀을 귀로만 듣고 지혜의 눈으로는 보지 못한 것을 깨닫고 제 스스로에게 얼마나 지혜가 부족한지,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또 한차례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성월심 보살님의 지혜 증득과 자비 실천에 있어서의 밸런스라는 질문과 스님의 답은 제 중생심 극복을 위해 시작한 수행 (아니, 엄밀히 말하면 입문)은 지금 어디에 있으며, 자비 실천이라는 수행은 얼마나 올바른 마음가짐으로 하고 있는지 점검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스님께서 자비 실천에 있어서 보상을 바라거나 꾀가 많아 몸을 사리는 바람직하지 못한 예를 들으셨을때는 너무나 뜨끔하였고 또 한차례 나의 어리석음과 게으름을 보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께서는 운오도 보살의 숙제 리포트를 공유해주셨습니다. 숙제를 내주신 스님의 의도를 짚어내며 지혜의 눈으로 영화를 풀어나가는 그 진솔함과 예리한 통찰력에 탄복을 거듭했습니다.사실 눈물나게 부럽기도 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운오도 보살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훌륭한 강의를 설해주신 스님과 이 자리를 만들어주신 도반 거사님, 보살님들께 진심을 다하여 감사 드리며 이 후기를 마칩니다.
혜서원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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