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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oBama 작성일13-01-21 23:42 조회28,13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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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의 내용은 2013년 1월 16일 달라스 보현사에서 있었던 가행정진(加行精進) 시간에 지암스님께서 말씀 해주신 내용을 요약한 것 입니다.  제가 옮기는 과정중에서 스님께서 말씀해 주신 내용과 본의 아니게 다르게 옮겨 졌을수도 있음을 말씀 드립니다. 혹시 내용을 읽어 보시고 정정해야 할 부분이 있으시다면, 지암스님께 질의를 하셔서 잘못된 점을 정정 받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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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禪)... 옛날 도인들은 무엇을 선(禪)이라고 했을까요?  안으로 망상번뇌(煩惱妄想)가 전혀 일어나지 않는 그것을 선이라고 했습니다. 선정(禪定)을 체험해 보지 않으면 우리가 목표하는것, 그게 깨달음이던지 아니면 뭔가 어디엔가 도달하는 뭐라도 그게 성취되기가 힘듭니다.  사유(思惟)할 줄 아는 동물이라면 이게 정말 최고의 법이거든요. 우리 자신이 본래의 내 자신으로 돌아가는 그 길입니다. 지금 '나'인줄 알고 사는 이게 다시 말하지만 객진번뇌(客塵煩惱)라.. 객(客)놀음인데 그걸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이게 객놀음임을 가르쳐 주실려고 부처님이 온갖 방편으로 설명을 하셨잖아요? 

역사이래로 계속 선각자들이 우리한테 '지금 네가 집착하고 착각하고 있는게 진짜가 아니고 가짜다.'라고 해오는데도.. 우리는 이 가짜를 애지중지하고 안 놓을려고 하고 있죠. 두려워서 그래요. 이것을 떠나버리면 내가 없어지는 줄 알고 두려워서 그렇습니다. 믿음(信心)도 빈약하고 발심(發心)도 빈약하고 무상(無常)도 모르고 이렇게 객진으로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절을 인연으로 해서 이 선방모임 혹은 참선하는 중을 만나서 선(禪)에 대해서 듣잖아요?  여러분.. 이시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시간인지 아세요? 혹시 그렇다면 참으로 이번에 용트림을 한번 해봐야 합니다.

우리가 사는 모습 일과를 돌아보면, 경허스님 참선곡에 나오는 구절 '허튼소리 우스개로 이날저날 헛보내고"처럼..  온갖 오욕경계에 불나방이 불빛을 쫓아 달려 들듯이 우리가 그러잖아요.  그런 구절을 볼 때마다 이게 내모습 이구나 보아지나요? 경허스님 참선곡을 일주일에 한번씩밖에 보지 못하고 있는데 참선모임 도반들이 나중엔 거의 다 외울수 있는 정도로 하겠지만, 이 참선곡은 보통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억겁생을 왜 도는지 아세요? 어리석어 객진에 집착해서 돌기도 하지만, 타성에 젖어서 돌게 되는 겁니다. 속성으로 딱히 좋지도 않은데, 딱히 이놈의 삶이 애착이 가지도 않은데 또 오게 됩니다.  타성에 젖어서 그런것도 있어요. 물론 애착으로도 오죠. 크게 애착해서 계속 오는 이도 있지만, 그렇게 인생의 삶에 애착하지도 않는 사람은 어째서 계속 오냐 하면..?  이 어리석음에 깨어나지를 못한것도 크지만 타성에 젖어 있어서 그렇습니다. 그냥 맨질맨질 습관이 되어가지고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또 오는 것입니다. 하루 일과를 타성에 젖어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잠깐 꿀맛같은 쾌락, 쾌락이 오욕의 큰 쾌락이 아니더라도, 우스개 소리해서 한바탕 웃고나면 나오는 카타르시스를 즐기는 겁니다.  미국사회가 특히 조크와 위트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걸 약간 하루 한번쯤 들여다 볼 일이지, 아주 업(業)을 삼아서 즐기면 그것 역시 참 어처구니 없는 불나방이거든요.

이번주 섣달그믐 십이월 여드레에 성도(成道)를 하신 날입니다. 12월 8일에 부처님께서 성도를 안하셨다면 불교라는 종교가 없었겠죠. 우리가 선방에 와서 체험 할려고 하는게 부처님께서 무엇을 성도를 해서 그렇게 대자유인이 되셨는지, 무엇을 성도를 하셔서 그때부터 해탈이니 열반이니 하는 용어를 만들어 우리를 이렇게 괴롭히시는지 그것을 알아내야 한단 말입니다. 부처님이 좋고 부처님 이론이 좋다고 해서 좋아만 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내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의미가 있는거죠.

경허스님 참선곡 다 아시겠어요? 무슨 소리인지 다 아시겠어요? 경허스님 참선곡을 읽으면서 이해가 되지않는 부분이 있으면 질문하시길 바랍니다.

질문 1) 경허스님 참선곡에 나오는 '일체처 일체시에 분명하게 지각하는 이것이 무엇인고?'는 지금 제가 들고 있는 화두입니다. 다른 화두를 할때도 이것을 들고 하는건가요?

답변 1) 다른 화두를 할 때에는 낙처(落處)라는게 있습니다. 스님이 분명하게 가르칩니다. 지금 한 보살님께선 다른 화두를 들고 계십니다. 일체처 일체시에 소소영영하게 지각하는 이것을 보면서 어찌하면 살아날꼬 이렇게는 못 합니다. 화두는 낙처가 있습니다. 분명한 포인트, 뜻이 있습니다. 화두는 스승없이 타면 안 됩니다. 스승없이 화두 수행을 하면 외도(外道)입니다. 분명히 낙처를 아는 스승이 화두를 줘야 합니다. 물론 제가 스승은 아닐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낙처는 아니까요. 저는 분명하게 낙처를 어디에다 두고 의심을 해야 하는지 가르쳐 드려요. 소소영영 지각하는 '이것' '이' 뿐인거라. 오늘 제가 '이것' '이'에 대해서 분명하게 집어 드리도록 할께요. 오늘 12시까지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정말로 한번만이라도 애를 써서 오롯해 보세요. 어떻게 하냐하면..? 

옛날 조사(祖師)들이.. '어떤게 부처인가요?' 우리가 부처라는 얘기는 들어보셨죠? 그 얘기 처음 듣는 분 있으신가요?  우리 자신이 그대로 부처다 라는 얘기는 들어보셨죠? 그런데 여러분 그 말을 믿습니까?  그럼, 뭐가 부처일까요?  내 무엇이 부처인가요?  아주 좋은 의심이잖아요? 그럼 그게 화두가 되는 거예요.  '이뭣고' 화두를 들고 있는 분들은 잘 들어보세요.

'어떤게 부처입니까?'하고 묻자, '평상심(平常心)이 부처다.'라고 답을 했습니다. 평상심이 무엇일까요?  그냥 평이한 마음이라는 말이죠.  이러면 우리네는 그만 손가락에 떨어져서 오만짓을 다 하게 되죠.  평상심은요..? 평소 우리가 못내는 마음이예요. 우린 보통 자면서 꿈을 꾸죠? 그건 평상심이 아니예요. 일어나자마자 하루 스케쥴 생각하고, 아침 먹을것을 생각하고, 끊임없이 생각하죠?  그건 평상심이 아니예요. 아시겠어요? 여러분.. 지금 제 얘기 들었어요?  망상하기 전에 제 얘기를 듣기만 한 것, 들은 놈. 그게 평상심이예요. 그것은 소소영영 지각함을 뚜렷히해서 지켜봐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 드릴께요. 그 평상심을 깨달으면 성불(成佛) 혹은 견성(見性) 했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도(道)를 본거며, 내가 뭔지를 본 것을 말합니다. 내 실체를 본 것을 말합니다.  그때를 견성을 했다 혹은 불화(佛花)가 피었다고도 하는 것입니다. 어떤 도인한테 제자가 물었어요.  "부처꽃(佛花)이 피지 않았을 때 진실(眞實)을 어떻게 구별합니까?"하고 물었습니다.  진실(眞實)은 참으로 실다운 것, 변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이때는 이렇고, 저때는 저렇다면 실답다고 할 수 없죠.  그러자 도인께서 "시진시실(是眞是實, 이것이 진眞이고 이것이 실實이다.)"라고 답했습니다. 똑같은거예요.  '이것'  이것이 진이고 이것이 실인게 바로 일여(一如)고 여여(如如)입니다. 그러니까, 제가가 다시 묻습니다. "그 일여, 여여의 자리에 있는 사람은 어떤 분상의 일입니까? 어떻게 되면 평상심이 됩니까? 어떻게 되면 내 분별망상에서 나오는게 아니라 여여(如如), 진여(眞如) 그대로 입니까?" 그러자 도인께서 바로 "시(是), 다시말하면 이것, '이뭣고' 할때 '이'인 이것은 너에게도 있고 나에게도 있다. 부족함없이.."라고 대답을 하셨습니다. 

'이것'할때 생각하는것 쫒아 다니면서 '이게 뭘꼬?'하지 말라 하잖아요.  분명하게 '이것'하면서 내가 지금 어떻게 있네 어떤 마음을 일으켰네 하는것을 분명하게 알아채는 순간 일어나는 마음은 자동으로 멈춘다고 했죠.  마음을 인위적으로 없앨려 하면 없어지지가 않아요. 그것은 망상인겁니다.  그러니 '이'하면서 나를 탁 쳐다보는 순간 그게 알아채기라고 하잖아요. 나를 탁 쳐다보는 순간을 회광반조(廻光返照)라고 해요. 회광반조란 일어나는 빛을 계속 밖으로 쫒아가는게 아니라, '이'하면서 바로 나를 쳐다보는 것을 말합니다. 어렵지 안잖아요.  그러면 왜 안 하는거냐 하면 이것을 알고 싶은 마음이 없어서 입니다. 여러분이 알고 싶은 마음이 나는 사람이 지금 이 자리에도 있을 것이고, 저랑 만나서 얼마 안되서 알고 싶은 마음을 낸 사람도 있지만 여전히 타성에 젖어서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으니까요.  하지만, 오늘은 누구던지 알아채면서 '이' '이게 도대체 뭘꼬?' 끊임없이 '이' 알아채기를 해 보세요. 

오늘은 12시 방선할 때까지 모두 묵언수행을 합시다.  말을 할려면 생각을 해야 하는데, 여러분은 아직 초심자라 할것 다하고 농담도 다하고 하면서 이 일을 하기가 힘듭니다.  오롯하게 12시까지는 10분 포행할 때도 포행만 하고 걸음걸음 알아채고 회광반조하고 '이'하면서, 내가 걸음을 어떻게 걷는지, 빨리 걷는지, 천천히 걷는지, 마음을 일으키면서 걷는지 다 알잖아요. 바로 그 아는 것 '이' 하면서 하세요. 특히 화두들고 있는 사람은 그렇게 하세요. 방선 죽비치면 집에 가면서도 각자 인사도 하지 말고, 그 '이'하면서 차에 시동 걸면서도 운전해 가면서 '이'하다가 집에가서 잠 들도록 하세요. 호흡을 하는 사람은 완전히 호흡삼매에 들겠다는 마음으로 하세요. 다만 상기(上氣)가 나도록 하시지는 마시고, 호흡을 고르기를 해서 시작하고, 하다가 호흡에 자꾸 빠져서 생각이나고 짜증이 날려고 하면은 그것조차 완전히 놔버리고 깊은 숨을 한번 쉬고나서 눈앞에서 호흡을 본다고 생각하고 해보세요.  호흡 세는것을 잊어버리고 호흡만 지켜보는 그 자리로 한번 들어가 보시면 좋겠습니다. 염불은 하시는 분은 '나무아미타불'을 하던지 '관세음보살'을 하던지 자기 소망은 잠깐 접어두고, 발원은 마지막에 하시도록 하세요. 무조건 '관세음보살'이 연결되서 끊어지지 않게 바로 이어서 '관세음보살'하데 '관세음보살'하는 자기 의식을 또렷또렷하게 쳐다 보도록 하세요. 그렇게 하면서 '관세음보살'하는 삼매에 들도록 해보세요. 그냥 관세음보살 바다에 풍덩 빠져보세요. 잠이 오면 정신을 차려서, 일부러 의식을 강하게 뭉쳐서 '관세음보살'이라고 염불하시고요.  뚜럿하게.. 그래도 '관세음보살'을 주시하는게 분명하게 안되면 내가 왜 관음염불을 하고 있는지, 목적이 뭔지 한번 더 돌이켜서 그 목적을 뚜렷히 잡고 다시 '관세음보살'하고 염불해보세요.

12시까지 죽어버릴 각오로 해보세요. 공부하다 죽는다면 그건 영광적인 겁니다. 공부하다 몸바꾸면.. 가는듯이 오시옵고, 오시는듯 가시온게 바로 공부하다 몸 바꾸는 겁니다. 그러니 염려하지 마시고, 오늘만큼은 몸뚱아리 잠깐 내려놓고 너무 통증때문에 끄달리면 어떤식으로 풀고, 화두수행하는 사람은 화두를 들려고 집중하고, 호흡하는 사람은 호흡에만 집중할려고 해보세요. 몸에 막 용쓰면 부작용이 나니 주의하시고요. 다만 없는게 아닙니다. 분명해요. 분명한걸 놓치지 마세요.  아셨습니까? 의식을 하나로 모을려고 애써 보십시요. 잠을 안자고 있어도 망상을 하고 있음이 보이면 장군죽비로 경책을 하겠습니다. 그러면 저한테 감사하게 경책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질문 2) 경허스님 참선곡 마지막을 보면 ".. 해묵서이 부진이라 이만적고 그치오니 부디부디 깊이아소. 다시 할말 있사오니 돌장승이 아이나면 그때 말할거요."라고 하면서 마쳤는데 왜 그랬는지요?

답변 2) 그런 표현을 격외구(格外句). 말이 안되는, 정해진 틀 밖의 표현을 말하는 겁니다.  우리가 서로 대화를 할려면 서로 약속된 언어방법이 있죠? 그것을 벗어날 걸 격외구라 합니다.  격외구는 도인들만 사용하는 겁니다. 당신들의 요지경에서 공부하고 오면 그때 내가 다시 할말이 있다는 말이예요. 경허스님의 참선곡 전반의 내용은 깨달음에 대해서 얘기한게 아니예요.  정신차려서 이렇게 깨달을려고 애를 써야한다라는 것을 방편으로 노래를 하신거예요. 그런데 깨닫고 보면, 우리 경허스님이 하신 노래도 엄청난 오류가 많아요. 그래서 당신이 격외구를 하나 넣어두시고 너희들이 나한테 몽둥이를 하나 들고 오면, 깨달아서 내가 헛말 했구나하고 오면 그때는 내가 돌장승이 아이난 도리를 제대로 말을 하겠다라는 겁니다. 이것은 깨달음의 세계예요. 앞의 내용은 다시 말하지만 깨달음에 내용이 아리나 교학적인 말입니다.  실제로 깨닫고 나면 말을 사용했지만 정확하지는 않다는 것을 경허스님께선 이미 깨달으셨기에 아시지만, 언어로서 전해줄 수 없으니 할수없이 이렇게 표현을 하신겁니다.  깨닫고 스승에게 제일 먼저 달려가서 하는 것이 몽둥이질을 하는 것이라. '당신이 헛소리를 했고, 당신이 어떤 부분에서 헛소리를 했는지 내가 다 아오.'하고 가는거예요. 그때 법거량이 붙고 싸움이 나는겁니다. 그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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