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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13, 무심을 단련으로 얻는 것은, 오히려 유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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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흰구름 작성일18-06-11 17:16 조회22,50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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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일 생각 일으켜도

일으킨 바 없는 것을 알면
끄달리지 않는다
습기 없애려 하거나
쫓아가지 말고
흐름에 맡겨라

그러나 알고 가야지
모르고 길을 가면
깜깜할 뿐이다

정진은 어떻게 해야하나
먼저 눈뜬 선지식의
안내를 받아야 한다

 

당장 한 생각에 깨달은 것이나 10지를 거쳐 깨달은 것이나, 그 효용에 있어서는 마찬가지다. 다시 깊고 얕음의 차이가 없다. 그렇지 않으면, 다만 영겁의 세월 동안 헛되이 괴로움을 받을 뿐이다.
무슨 문제를 해결하고자 할 때, 한 번에 되는 사람도 있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서 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여러 단계를 거쳐서 올라간 것이나 한 번에 올라간 것이나, 근본문제를 해결했다는 것에는 차이가 없다. 그래서 오랫동안 애쓰는 사람을 보고 둔하다고 하는 것이다. 한 번에 확철대오 하면 그만인 것을, 두 번, 세 번에 걸쳐 깨달으려니 어리석다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처음에 안 것은 얕은 데에 머물렀는데, 다시 깨닫고 보니 깊은 데에 들어갔다.”는 말은 허망한 소리다. 이렇게 깨친 사람은 단계에 천착해서 뒷사람도 같은 방법으로 가르치려고 한다. 이 공부에는 깊고 얕음이 아니라, 알고 모르고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악이나 선을 짓는 것은 모두 모양[相]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모양에 집착하여 선악을 짓게 되면, 왜곡되어 윤회를 받게 된다.
너와 나의 구분이 생긴 이상, 분별심이 없을 수가 없다. 황벽스님은 차제를 빌리지 않고 조사선 도리로 배휴 거사를 한방에 깨쳐주었다. 지금 한 생각 돌이켜서, 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것을 보는 순간, 그대로 끝이다. 하지만 공부하고 난 후에도 부처가 되고 싶고 보살이 되고 싶은 생각을 자꾸 일으키다보니, 스스로 어지러워져서 자기 공부도 뒤집고 선지식의 가르침도 무시하게 된다. 이것을 스스로 돌아보고 자각하여 진실로 정진하게 되면, 공덕이 쌓이고 원력이 붙는다. 그러면 공부힘이 생겨서, 다시는 물러서지 않는 불퇴전의 입장으로 거듭나게 된다.

그 무엇도 말끝에 이 법을 곧바로 깨닫는 것만 못하다. 이 법이 곧 마음이요, 마음 외에 따로 법이 없다. 이 마음이 곧 법이요, 법 외에 따로 마음이 없다. 마음 스스로 무심이 되면, 무심이라 할 것도 없다.
실상은 뭐라고 이름 붙이고 설명할만한 것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그런데 그것을 설명하려다 보니 ‘마음’이라고 이름 붙여 부르고 있는데, 이미 확인한 사람은 의연하게 수용하면 그만이다. 때가 되면 밥을 먹고, 또 때가 되면 잠을 자는 것뿐이다.

마음을 가지고 무심해지려고 하면, 도리어 마음이 있게 된다.
본래 다 드러났는데, 무엇을 또 없애려고 하는가? 공부에 집착해서 일부러 생각을 일으키지 않으려고 드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세상 돌아가는 입장에서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하루 종일 생각을 일으켜도 일으킨 바가 없다는 것을 알면, 일어나는 생각에 끄달리지 않으며 또 없애려 들 필요도 없다.

다만 묵묵히 계합(契合)할 따름이다. 모든 생각과 추론이 끊어졌다. 고로, ‘언어의 길이 끊기고, 마음 가는 곳이 멸했다.’고 한 것이다. 이 마음이 본래 청정한 부처인데, 사람마다 모두 그것을 지녔다. 꿈틀거리는 벌레까지도 불보살과 한 몸으로 다를 것이 없다. 다만 망상분별 때문에 갖가지 업과를 지을 뿐이다.
확철대오 해서 똑같이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무엇이 부처님과 다를 게 없는지, 또 무엇이 차별된 모습을 쓰게 했는지를 자연히 알게 된다.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하셔서 길을 열어 보이셨고, 조사들께서 이어오시지 않았다면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그저 감사하고 감사한 일이다.

본원청정심이다. 본래 부처에는 실로 일물(一物)도 없다. 툭 트이고 적정(寂靜)하며, 밝고 오묘하며 안락할 따름이다.
밝음이 오면 밝아지고, 어둠이 오면 어두워진다. 밝고 어두운 모습은 아니지만, 밝다고 하면 가장 밝고 어둡다고 하면 가장 어두운 자리다. 편안하고 편안하지 않고를 떠난, 편안한 자리다. 열반의 진락(眞樂)이다. 참다운 열반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자리가 바로 마음자리라고 했다.

스스로 깊이 깨달아 들어가면, 직하에 그것이다. 원만 구족하여 다시 모자람이 없다.
깨닫고 깨닫지 않고에 상관없이 본래 성품을 가지고 쓰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 까닭을 모르고 지내다가 다행히 부처님 가르침을 만나 밝게 사무쳐 알게 되었다. 그러나 과거 습기로 인한 어리석음이 아직 남아, 나도 모르게 눈앞을 어지럽힌다. “공부가 되었는데도 왜 일어나는가?” 하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을 없애려고 하거나 쫓아가지 말고 흐름에 맡겨서 내버려둔 채로 세월을 지낸다면 좋은 인연은 분명히 온다. 그렇더라도 알고 시간을 보내야지, 모르고 길을 가면 장님의 세상처럼 영원히 깜깜할 뿐이다.

설사 3아승지겁을 정진 수행하여 모든 지위를 거치더라도, 한 생각 증득하는 순간에 이르러서는 원래 자기 부처를 깨달을 뿐이다.
수 없는 세월을 수행한다 하더라도 결국은 본래부처를 깨닫는데 불과한 것이다. 정진도 어떠한 모습을 만들어서 정진이라고 착각하면 안 된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정진은, 과거의 업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이런 시간을 보내는 것뿐이다. 그러나 어떻게든 해보려고 마음을 일으켜서 하는 정진은 어리석은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정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더 어리석은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먼저 공부해서 깨달음의 눈을 뜬 선지식의 안내를 받아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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