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 후불탱화 법문 5편 십대제자중 해공제일 수보리존자 > 다르마방


정법의 진리 기쁨의 샘

다르마방

다르마방

다르마방

상단 후불탱화 법문 5편 십대제자중 해공제일 수보리존자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01-09 11:35 조회17,897회 댓글0건

본문

불법이 미치지 않았던 수보리의 고향, 코살라국
이번에 만날 십대제자는 제6대 달라이 라마 ‘청양가초’ 조차 애틋하게 끌어안았던 세속의 감정에서 처음부터 걸림이 없었을 뿐 아니라 부처님의 ‘공(空)’ 사상을 확립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주었던 수보리 존자이다. 수보리는 십대제자 중 유일하게 코살라국 출신이다. 
부처님과 수보리가 만난 장소는 기원정사였다. 기원정사는 부처님과 수보리가 천 이백 오십여명의 대 비구들 앞에서 ‘공’ 사상에 대하여 깊은 대화를 나눈 곳이기도 하다. 부처님과 수보리의 대화는 그대로 전해져서 ‘금강경’이 되었다. 기원정사는 금강경 뿐 아니라 무려 경전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법문이 설해진 곳이기도 하다. 이처럼 불교 역사에서 중요한 장소인 기원정사의 탄생 배경에는 수보리의 숙부인 급고독 장자와의 각별한 인연이 있다. 
부처님은 깨달음을 얻은 이후 줄곧 빔비사라왕이 다스리는 마가다국에서 활동을 하였다. 이때 부처님은 이미 가섭 3형제와 그들의 제자 1천명을 받아들여 천 명이 넘는 인원이 교단을 이루고 있었다. 이들을 위해 빔비사라왕은 죽림정사를 기증하였다. 얼마 후 사리불과 목건련이 각각 제자 1백 명을 거느리고 부처님께 귀의하여 상수제자가 됨으로써 교단은 1천 2백 50여명의 규모를 갖추게 되었다. 이렇게 갖추어진 교단에 부처님이 손수 마중을 나가 맞이한 마하가섭이 의발제자로 합류한 것이다. 국왕과 바라문은 사회의 최상류층이자 지도층으로 사람들의 삶에 매우 영향력을 지닌 존재이다. 바라문 출신의 가섭형제가 부처님께 귀의하고 부처님의 보호자이자 제자를 자청한 빔비사라왕이 사원을 기증하고 사리불과 목건련 그리고 중인도 최고 명문재벌가 출신의 마하가섭이 교단에 들어오자 마가다국 안에서 부처님의 명성은 점점 높아져갔다. 
마가다국은 부처님에게 호의적인 곳이었지만 수보리의 고향 코살라국은 달랐다. 파세나짓왕이 다스리는 코살라국은 부처님의 고향 카필라국을 속국으로 둔 강대국이었으며 불법이 일체 전해진 적이 없는 곳이었다. 하지만 무르익은 인연은 부처님을 코살라국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무르익은 인연에도 결정적인 계기는 필요한 법이다. 이 결정적인 계기를 만든 인물이 바로 급고독 장자로 그는 수보리의 큰아버지였다. 코살라국 출신의 대재벌이자 바라문이었던 급고독 장자는 사업차 마가다국에 왔다가 여동생 부부로부터 부처님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불법에 이미 깊게 감화된 그는 아침이 밝아오는 것을 기다리지 못하고 죽림정사를 서성거리다가 부처님과 만난다. 부처님을 실제로 뵙고 법문을 들은 급고독 장자는 너무나 깊이 감격한 나머지 마가다국을 떠나면서 부처님께 코살라국을 찾아 불법을 전파해주실 것을 간곡하게 청했다.

태자의 정원을 황금으로 덮어 사원을 짓다
부처님의 허락을 얻은 후 급고독 장자가 한 첫 번째 일은 코살라국으로 돌아가 부처님과 교단이 머물 사원을 짓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급고독 장자는 코살라국으로 돌아가면서 부처님께 사리불 존자와 함께 가고 싶다고 청했고 부처님은 이를 허락했다. 
흔히 교육은 백년을 내다보는 사업이라고 한다. 하지만 한 사람의 위대한 스승이자 철학자를 섭외하는 급고독 장자의 안목과 정성 그리고 업무처리능력과 센스는 2천 5백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감탄이 나올 정도이다. 지금은 코살라국도 마가다국도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그가 기증한 기원정사는 죽림정사와 더불어 불교의 대표적 성지로 손꼽힌다. 이것만 보아도 급고독 장자가 요즘의 돈만 많은 부자들에 비하여 얼마나 개념과 인품을 두루 갖춘 인물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 
사리불 존자와 함께 부처님과 교단이 머물 대규모 사원을 지을 장소를 찾던 급고독 장자는 마침내 기타 태자의 정원을 발견하였다. 코살라국 파세나짓왕의 후계자인 기타 태자의 정원은 수도에서 가까울 뿐 아니라 천 명이 넘는 인원을 충분히 수용할 만큼 넓었으며 나무들이 아름다웠다. 사원을 지을 장소를 발견한 급고독 장자는 거침없이 기타 태자를 찾아가 정원을 자신에게 팔 것을 청했다. 그러나 평소에도 자신의 정원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기타 태자는 거절했다. 하지만 급고독 장자는 포기하지 않고 돈이라면 얼마든지 내겠다며 태자를 설득했다. 결국 급고독 장자가 부유함을 과시한다고 생각한 기타 태자는 차갑게 웃으며 ‘빈 말’을 던졌다.

“저 정원을 황금으로 덮을 만큼의 돈을 가져온다면 팔겠소.”

기타 태자의 말을 들은 급고독 장자는 그 길로 집으로 달려가 수레에 황금을 가득 싣고 와서 정원을 덮기 시작했다. 한 마디의 말은 천 냥의 금보다도 무거운 법이다. 더구나 태자의 말이라면 더욱 그렇다. 기타 태자는 자신이 무심코 던진 말을 그대로 실천하는 급고독 장자를 보고 당황했다. 그리고 비로소 급고독 장자가 자신의 정원을 그렇게까지 필요로 하는 이유에 대하여 제대로 듣게 되었고 부처님의 존재에 대하여 알게 되었다. 그때까지 부처님의 대한 이야기만 들었을 뿐 한 번도 본 적이 없던 기타 태자는 확신에 찬 급고독 장자의 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고 자신의 정원을 팔았다. 그리고 사원을 짓는데 필요한 목재와 정원에 필요한 나무까지도 기꺼이 제공해주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사원이 바로 ‘기수급고독원’이다. ‘기수급고독원’은 ‘기타 태자의 나무(=기수)’와 ‘급고독 장자가 기증한 사원’이라는 뜻으로 ‘기원정사’라고 줄여서 부르기도 한다.

세련되고 품격이 넘치는 부처님의 포교 스타일
새로운 지역에서 활동을 시작할 때 ‘사회 지도층’을 먼저 교화, 포섭하는 것은 부처님의 대표적인 포교 스타일이다. 마가다국에서도 이미 부처님은 빔비사라왕과 가섭 형제의 귀의를 통해 빠르게 교단의 정착과 성장을 거둔 바 있었다. 하지만 코살라국과 마가다국의 차이는 분명히 있었고 이를 잘 알고 계셨던 부처님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불법에 대한 호기심을 충분히 자극하는 새로운 방법으로 코살라국과의 만남을 준비했다. 
기원정사를 짓는 동안 사리불은 건축 감독을 하면서 동시에 코살라국의 외도들의 시비와 논쟁을 미리 조율하였다. 출가하기 전 바라문 소년학자로 명성을 날렸던 사리불은 지혜롭기도 으뜸이었지만 특히 바라문과의 논쟁에 강했다. 본디 그의 외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외삼촌 모두 명성이 자자한 논사 출신이 아니었던가. 부처님의 명성에 호기심을 갖거나 시기하는 마음을 품었던 코살라국의 논사들은 사리불의 논리정연한 말솜씨를 당해낼 수가 없었다. 여기에 목건련의 신통력이 더해져 억지를 부리는 외도들을 압도하니 부처님에 대한 기대감과 소문은 코살라국 안에서 점점 커졌다.
이러한 과정들은 급고독 장자의 간곡한 부탁과 자발적인 참여로 이루어졌으며 부처님이 직접 관여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불법에 대한 거부감을 극소화 시키는 효과를 거두었다. 동시에 기타 태자와 급고독 장자의 사회적 지위와 명성 그리고 대규모 건축공사가 진행되는 기원정사에 대한 궁금증은 자연스럽게 불법과 부처님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며 홍보가 되었다. 하지만 이를 누구보다 냉정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인물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총명함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던 급고독 장자의 조카 수보리였다.

까칠한 사위성의 천재 논사, 수보리
수보리가 불법을 접하게 된 환경은 사리불과 목건련, 마하가섭에 비하면 훨씬 특혜를 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은 비록 수보리보다 먼저 불법에 귀의하긴 했으나 부처님을 만나기 전 진정한 스승을 찾아 헤매며 수많은 시간을 보내야만 했던 공통점이 있었다. 하지만 수보리는 달랐다. 그의 큰아버지가 직접 기원정사를 기증하며 부처님을 코살라국으로 모셔왔으니 수보리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부처님을 뵙고 법문을 들을 수 있었다. 게다가 그와 가장 가까운 가족들은 이미 불법에 귀의한 후였기 때문에 마하가섭과 같이 부모의 반대에 부딪힐 염려도 전혀 없었다. 아니 수보리의 가족들은 하루라도 빨리 수보리도 부처님께 귀의하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수보리는 십대제자 중에서 불법에 귀의하기 전 가족들의 전폭적인 지지와 후원을 받은 유일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부처님과 불법에 열광적인 주변 환경은 오히려 수보리에게 반발심이 들게 만들었고 그는 한층 객관적이고 냉철한 시선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수보리는 가족들이 불법의 귀의할 것을 권하거나 부처님 뵙기를 권할 때마다 번번이 거절하였다. 수보리의 성품은 사실 어린 시절부터 온화함이나 부드러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태어날 때부터 총명함이 남달랐던 수보리는 스스로 자신의 지혜로움을 잘 알았고 논쟁에서 한 번도 진 적이 없었다. 또한 그의 주된 관심사는 다른 바라문들과 달리 논쟁을 통해 얻는 논사로써의 명예나 부유함이 아니라 오직 인생의 지혜에 통달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일찍부터 다른 일에 대해서는 무심하였던 것이다. 
이런 수보리의 생각과 태도는 오만하다는 인상을 주었다. 하지만 수보리의 오만함은 가난하거나 신분이 낮은 사람에 대한 무시가 아니라 인생의 진리를 통달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소위 ‘지식인’, ‘수행자’, ‘철학자’들을 향한 것이었다. 그는 스스로 현자나 논사를 자처하며 현학적인 말들을 쏟아내는 이들을 만나면 가차 없이 콧대를 눌러놓곤 했다. 그때마다 수보리를 당해낸 사람이 없었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다보니 수보리의 마음속에는 의심과 불만이 가득 차게 되었던 것이다.

마음 속 가득한 공허함의 원인을 알기 위해 부처님을 만나다
수보리의 아버지는 풀리지 않는 도저히 풀어질 수 없는 불만에 가득 찬 아들에게 불법에 귀의하여 법문 듣기를 권했다. 그러자 수보리는 아버지에게 말했다.

“우주에는 인간을 포함해서 많은 것들이 있는 듯 하지만 있는 것이 아니고 모든 것이 덧없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지혜를 얻은 성인도 이 점에 대해서는 나만 못할 것입니다. 그 어떤 사람도 내 마음 속의 세계를 명확히 알지는 못합니다.”

칼 같은 거절이었다. 평소에도 수보리는 한 가지 생각에 몰두하면 그 의문이 풀릴 때까지 주변 사람을 괴롭히곤 했다. 결국 주변의 사람들은 그를 감당하지 못해 외면하였다. 그러자 그는 동물들을 붙들고 질문을 퍼부었고 동물들조차 괴로움을 견디지 못했다. 이를 목격한 수보리의 가족과 친지들의 설득으로 결국 수보리는 가족들과 헤어져 홀로 산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산속에서도 그는 온갖 사물들을 볼 때마다 시비를 걸고 질문을 계속했다. 사실 수보리의 마음속에는 어린 시절부터 풀리지 않았던 한 가지 의문이 있었다. 그는 이것을 풀기 위해 하루 종일 책을 읽고 사색을 하며 깊이 생각했으나 도저히 의문을 풀 수가 없었고 수많은 논사들과 만나 논쟁을 펼쳤으나 이 의문을 시원하게 풀어준 사람을 만난 적도 없었다. 
수보리의 질문은 애꿎은 숲속의 식물과 동물들에게까지 쏟아졌고 견디다 못한 숲속의 동물들은 산신을 찾아가 도저히 수보리와 함께 숲에서 살 수 없다고 하소연을 하였다. 결국 수보리는 숲에서도 쫓겨나게 되었다. 숲에서 쫓겨난 수보리는 산신의 안내를 받아 그의 의문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인물에게 가게 되었다. 산신은 수보리를 부처님에게 데려갔다. 그때 부처님은 마침 기원정사에서 설법을 하고 계셨다. 수보리는 멀리서 부처님의 법문을 들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다툴 것이 없다. ‘너’와 ‘나’의 분별도 없다. 모든 것은 인연에 따라 났으며 이것이 있음으로 저것이 있는 것이지 그 무엇도 독립해서 존재할 수는 없다. 따라서 나를 비롯한 모든 것은 서로 의존해서 존재하는 것이므로 모든 존재는 서로 자비로써 대하고 은혜를 베풀며 서로 이익이 되도록 도와가며 살아야 한다. 서로 미워하고, 헤치고, 다투어서는 안 된다. 나 혼자 잘난 체 하고, 나만 잘 살자고 남을 헤쳐서는 안 된다.”

스스로 깨우치기 위해 제자가 되길 청하다
부처님의 설법은 지극히 평범했지만 자비심이 넘쳤고 강한 호소력이 있어 듣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멀리서 듣던 수보리도 자신도 모르게 부처님을 향해 합장을 하고 고개를 숙였다. 설법이 끝나고 사람들이 모두 돌아간 후에도 수보리는 자리를 뜨지 못했다. 그는 부처님이 머물고 계신 방 앞으로 걸어갔지만 차마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서성거리기만 했다. 그때 부처님이 수보리의 마음을 알고 문 밖으로 나와 수보리에게 말을 건넸다.

"그대는 어디 사는 누구인가? 왜 들어오지 않고 문 밖에서 서성거리는가?”

마침내 부처님과 만난 수보리는 자신이 누구인지 밝힌 후 부처님의 제자가 되기를 청한다. 진정으로 대단한 것은 수보리가 자신이 오랫동안 품고 있던 의문에 대한 답을 부처님께 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아예 이와 관련된 질문도 하지 않았다. 그는 다만 부처님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는 어려서부터 네 가지 베다의 경전을 비롯하여 많은 책을 읽었으나 한 가지 풀지 못한 문제가 있어 부처님 문하에서 수도하면서 깨우치고자 합니다. 거두어주신다면 출가하여 부처님의 제자가 되고자 합니다.”

인간은 호기심에 가장 약한 동물이다. 지혜롭고 총명한 인간일수록 더욱 그렇다. 하지만 수보리는 얼마든지 속 시원한 대답을 해줄 수 있는 인물 앞에서 다만 제자가 되길 청했을 뿐 그토록 오랫동안 자신을 괴롭혀온 의문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그는 스스로 깨우치길 원했던 것이다. 그리고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 공부를 한다면 분명히 스스로 깨우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던 것이다. 확신이 생긴 순간, 그 오랜 세월 수보리를 괴롭혀온 질문은 즐거움으로 바뀌었다. 
부처님의 제자가 된 수보리는 누구보다 열심히 법문을 듣고 공부를 하였으며 수행을 하였다. 본디 총명하던 그는 배움의 속도가 남달랐고 마침내 이것이 있음으로 저것이 있는, 인(因)과 연(緣)의 실체가 아무 것도 없는, 비어있는 상태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연기(緣起)를 포함한 진리 자체가 인과 연을 떠난 공(空)임을 알게 된 것이다. 이는 지금까지 인과 연을 주로 설해오신 부처님의 가르침 속에 담긴 미묘한 경계를 뛰어넘은 위대한 깨우침이었다. 수보리의 깨달음은 부처님이 공의 이치에 대하여 본격적으로 설법하기 전이었다. 
십대제자 중 단 한 명뿐인 코살라국 출신의 수보리는 이 깨달음을 바탕으로 훗날 기원정사에서 모든 비구들을 대신하여 부처님에게 공(空) 사상에 대한 질문을 하며 대화를 나눈다. 이때 수보리와 부처님의 대화를 기록한 경전이 바로 ‘금강경’이니 부처님 당시에서나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수보리의 역할과 캐릭터는 실로 독보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 후 수보리는 공(空)의 이치를 묻는 외도에게 집을 가리키며 그 재료인 나무와 돌, 흙과 짚을 모으면 집이 되지만 흩으면 아무 것도 없는 것이라고 명쾌하게 설명해주었다. 이때 수보리가 집과 집의 재료를 예로 들어 우주만물의 이치를 설명했던 비유는 지금까지도 인용되고 있는 명언 중의 명언이라고 할 수 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일요 법회 : 매주 일요일 오전 10:30 AM
선방 모임 : 매주 수요일 저녁 7:00 PM
불교 대학 : 매주 화요일 저녁 7:00 PM부터
1130 Abrams Rd, Richardson, TX 75081     Tel : 972.238.8005
COPYRIGHT ⓒ 달라스 보현사. ALL RIGHTS RESERVED.